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유예된 전쟁 혹은 멈춰진 전쟁

정민정 성장기업부장

아테네 부상과 스파르타 위기감

'투키디데스의 함정' 패턴 도출

미중 대결보다 역사서 교훈 얻고

새로운 관계 통한 힘의 균형 찾길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략하기 전까지 스파르타는 이 지역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다. 사내아이가 7세가 되면 군사학교에 입학시키고 결혼 후에도 막사에 살면서 공동 식사를 하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60세가 돼야 군 복무의 의무에서 벗어날 정도로 전투력을 지상 목표로 삼았다. 반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항구도시에 자리 잡은 아테네는 개방적인 사회로, 해상 무역을 통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라는 새롭고 대담한 정치적 실험까지 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페르시아의 침략이라는 공동의 위협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협력을 이끌었다.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맞붙어 장렬하게 전사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는 아테네 사령관을 필두로 한 연합군 함대가 3분의1에 불과한 병력으로 페르시아 함대를 무찔렀다. 그리스 연합군의 역사적 승리는 고대 그리스의 부흥과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상 그렇지 못했다. 전쟁의 승리에 취한 아테네는 더 많은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여겼고 한 세기 넘게 지배 세력의 지위를 누렸던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도전에 단호하게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스파르타가 승리했으나 고대 그리스 문명은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후 그리스는 인류사의 중심권에서 벗어났다.


군인이자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는 신흥 세력인 아테네가 수구 세력인 스파르타에 맞선 수십년의 역사를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남겼다. 30년 평화조약 등 양국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전쟁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그는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을 지목했다. 그로부터 2,500여년 후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고대 그리스인의 통찰에서 힌트를 얻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패턴을 찾아내 이를 미중관계에 적용했다.

관련기사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 서문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2세기 전에 남긴 경고로 시작한다. “잠에 빠져 있는 중국을 깨우지 말라. 중국이 깨어나는 순간 온 세상이 뒤흔들릴 테니.”

급속도로 부상하는 중국이 지금껏 당연시된 미국의 우위에 맞서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98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00억달러가 채 안 됐지만 2015년에는 11조달러에 달한다. 오는 2024년에는 중국이 35조달러, 미국이 25조달러로 완전히 역전된다. 미국이 세계은행에서 투표권을 더 많이 갖겠다는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2013년 중국은 베이징에 독자적인 체제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했다. 급기야 7월 미중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전 세계에 드리웠다. 최근 이러한 흐름을 뒤집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 중간선거를 닷새 앞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격적인 전화 통화를 갖고 경제 소통 강화와 북핵 문제 등을 논의했다. 시장에서는 무역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낙관 섞인 관측이 제기됐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경계론이 우세하다. 실제로 5일 시장에서는 비관론이 확산하면서 주요 증시 지표가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수십년 안에 미중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높다”며 “비극을 피하기 위해 양국의 지도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공식을 적용하면 미국이 중국을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국가로 인정하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미중 전쟁은 ‘예정됐지만 유예된 전쟁’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노력 덕분에 ‘멈춰진 전쟁’이 될 것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변기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역사가 라마찬드라 구하의 깨달음처럼 인류가 좀 더 나은 선택지로 한 발 내딛기를 소망해본다.

정민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