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000270)는 7일 ‘그랩’에 총 2억5,000만달러(한화 약 2,84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올해 1월 2,500만달러를 선투자한 것을 포함하면 그랩에 총 2억7,500만달러를 투자한 셈이다. 이는 현대·기아차가 외부 기업에 투자한 사례 중 사상 최대 규모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랩의 미래 성장 가능성은 물론 전략적 파트너십의 중요성 등을 신중히 검토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랩은 지난 2012년 설립 이후 동남아 카헤일링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세계 3위의 차량공유서비스 기업이다. 현재 동남아 8개국 235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랩 플랫폼을 이용해 운행한 실적만 25억건에 달한다. 최근에는 카헤일링뿐만 아니라 모바일결제시스템과 배달 사업 등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소프트뱅크를 비롯해 중국의 디디, 한국의 SK㈜ 등이 지분투자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도 투자를 결정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분투자와 함께 그랩과 전기차를 활용한 신규 모빌리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대·기아차와 그랩은 ‘전략 투자 및 전기차 부문 협력’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6일 정 부회장과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나 앞으로의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동남아에서 그랩의 비즈니스 플랫폼에 전기차를 활용한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랩 드라이버가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를 활용해 차량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내년 싱가포르에서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내년 초 전기차 모델 200대를 그랩 측에 최초로 공급하며 기아차도 자사의 전기차를 추가로 공급할 계획이다. 시범 사업 결과를 검토해 앞으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와 함께 현대·기아차는 그랩과의 협업을 통해 전기차 드라이버 대상의 유지 및 보수, 금융 등 EV 특화 서비스는 물론 모빌리티 서비스에 최적화된 전기차 모델 개발에도 협력해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동남아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충전 인프라와 배터리 업체 등과도 동맹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지영조 현대·기아차 전략기술본부장 부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지역 중 하나인 동남아시아는 전기자동차의 신흥 허브(Hub)가 될 것”이라며 “그랩은 동남아 시장에서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고 완벽한 EV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고의 협력 파트너사”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동남아 차량 공유 시장에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 지역에 최적화된 전기차 개발과 판매 확대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동남아 전기차 시장은 수요가 내년 2,400여대 수준에서 오는 2021년 3만8,000대를 넘어서고 2025년에는 34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될 만큼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 시장의 ‘이니셔티브(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덥고 습한 기후는 온난한 기후에서 개발된 전기차 배터리나 전자장비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동남아 지역에서 현대·기아차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방대한 전기차 운행 관련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 현대차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의 투자”라고 풀이했다.
현대차는 그랩 추가 투자를 통해 글로벌 차량 공유 시장에서의 통합적 대응 체제도 완성했다. 이미 현대차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아이오닉EV를 활용한 카셰어링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인도 카셰어링 업체 레브, 미국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 미고, 중국 라스트 마일 운송수단 배터리 공유 업체 임모터, 호주의 P2P 카셰어링 업체 카넥스트도어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으며 기아차는 국내와 스페인 마드리드에 차량 공유서비스 ‘위블(WiBLE)’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