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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우울할 땐 감정 가는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치료방법"

억지로 정상상태로 되돌리려 하기보다

너그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지혜 필요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심리치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심리치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마음이 흘러가는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마음의 근육’을 키우다 보면 숱한 좌절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임상연구를 통해 마음치료사로 대중 앞에 나선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강박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은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면 이를 억지로 원래 상태로 회복해야 한다고 억누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강박감 자체가 오히려 우울감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마음이 가는 대로 그 자체를 수용하는 데서 치유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울증 치료에 대한 심리학 연구의 트렌드가 ‘우울해도 돼’라고 의연하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허 교수가 최근 출간한 저서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역시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개개인이 자존감의 높고 낮음에 집착하고 강박하는 틀에서 벗어나 ‘지금의 나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존감의 덫에서 벗어나 조각난 자신의 마음을 토닥이는 것이 치유를 위한 과학적인 위로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과학적 근거와 임상연구 사례를 저서를 통해 기술하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허 교수의 심리치료 철학은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두면 잘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은 스페인어 제목의 해외 명곡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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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심리치료법은 ‘안 되면 말고’예요. 수업할 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없고 좋은 사람도 없고, 내 마음 같은 사람도 없다’예요.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사람 관계에서 크게 실망할 일이 없어요.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좋은 주인일 필요가 있어요.”

허 교수는 한국인만의 심리적인 특징을 평가할 수 있는 학문적 키워드로 ‘구강기 고착’과 ‘분리’를 꼽았다. 고전적인 발달심리학에서 다루는 학술용어인 ‘구강기’는 주로 갓난아이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발달 단계다. 이 기간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가슴을 찾고 장난감이나 자신의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물고 빠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낀다. 유아는 정상적으로 성장하면 자족감을 느끼는 기관이 입에서 다른 부위로 점차 이동하면서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게 고전적인 발달심리학 이론인데 만약 이 발달 과정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으면 각 단계별로 심리적 발달이 정체되는 ‘고착’이 이뤄질 수 있다는 학설이다. 허 교수는 우리 민족이 근대에 식민지 지배를 받고 현대에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배고프게 살았던 경험이 구강적 만족에 대한 잠재의식적 고착의 특성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내 자영업종 중 식·음료 관련 비중이 매우 높은 점, 노래방이 성업하는 현상 등이 구강기 고착의 잠재의식이 대중적으로 표출화된 현상의 하나라는 분석도 곁들여졌다.

그가 꼽은 또 다른 키워드인 ‘분리’는 쉽게 말해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사고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성향이 다른 진영이 서로 적폐라거나 빨갱이라고 적대시하며 편 가르기를 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허 교수는 이 같은 사회적 특성 속에서도 개인이 다양한 좌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좌절감이나 우울감은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인정하고 흘려넘기는 심리적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이호재기자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이호재기자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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