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석유’비축기지가 마포‘문화’비축기지가 됐다. 마포문화비축기지는 이제 문을 연 지 1년이 막 지난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이다. 사실, 쓰던 것을 다시 살려 쓰는 재생이 아니라 완전히 버려지고 잊혀진 곳의 재탄생에 가깝다. 심사위원의 평가처럼 장소의 기억을 단순히 재현했다기보다 ‘발굴’과 ‘재구축’의 과정을 거쳤다.
장소의 기억은 6,907만 리터의 석유탱크로 남아있다. 1974년 1차 ‘오일쇼크’로 국제유가가 4배나 치솟자 서울시는 1976년부터 2년에 걸쳐 석유비축기지를 만든다. 매봉산 암반을 발파·굴착해 다섯 개의 탱크가 산자락에 안겨 묻혔다. 1급 보안시설이었던 이곳은 당시 서울시민의 한 달 분 연료를 보관했다.
하지만 시대는 흘러 변화했다. 석유에 의존하던 산업화 시대가 저물고 이 시설도 땅 아래에 십수년간 잠겼다.
얼마간 아무런 쓰임이 없었기에 발굴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2014년 공모에 당선된 설계자들도 산자락에 묻힌 5개의 탱크가 무사할지 반신반의했다. 흙을 걷어내고 옹벽이 나오자 석유 탱크는 유적처럼 재생의 대상이 됐다.
3년여의 공사를 거쳐 5개의 탱크는 6개가 됐다. 각 탱크를 각각의 의미를 담아 재구축했다. 1번 탱크와 2번 탱크를 들어내 새롭게 여섯번째 탱크 T6(2,948㎡)를 만들었다. T6은 마포문화비축기지에 가장 큰 실내 공간을 갖고 있어 전시실, 강의실, 문화아카이브, 카페, 사무실 등으로 운영된다.
새로 지어진 탱크의 특이점은 바로 탱크의 철판이다. 넘버링을 하지 않고 해체하고 재조립한 탓에 설계자도 의도치 않은 얼룩덜룩한 철판 패턴이 색다른 입면을 형성했다.
해체된 1번 탱크 T1(554㎡)은 유리 파빌리온이다. 유리 너머 날 것의 옹벽이 그대로 배경이 돼 공연, 전시 등이 벌어진다. 마찬가지로 2번 탱크 T2는 둥근 자리만 남기고 공연장(2,579㎡)으로 변모했다. 상부는 옹벽을 무대 삼은 야외 공연이고 지하는 조명, 음향 설비를 갖춘 실내 공연장이다.
3, 4번 탱크 T3(753㎡), T4(984㎡)는 원형으로 남겨있다. T4는 장소의 기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안에 석유가 가득했을 거란 상상과 함께 같은 공간을 산책하듯 들여다 보고, 올려다볼 수 있다. 먹먹한 소리를 몸으로 들으며 천장 주입구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을 만져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내부를 가득 채운 미디어 아트 전시가 없어도 그 자체를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T5(890㎡)는 마포 석유비축기지 역사를 볼 수 있는 이야기 관이다.
이 밖에도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너른 땅은 문화마당 T0(3만5,212㎡)로 활용된다. 야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각종 공연도 벌어진다. 2017년 9월 개장한 후 1년간 50만명의 시민이 문화비축기지를 다녀갔다. 이제 가족들의 동네 나들이 장소,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찾아온다. 매봉산을 따라 내려온 1.3km의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산 정상에서 문화비축기지 전경부터 한강까지 내려다볼 수 있다.
운영상으로도 ‘협치’를 내세웠다. 사업 초기 설계 단계부터 시민이 주도하는 운영 모델을 도입했다. ‘협치위원회’를 중심으로 문화적 가치를 담아 도시재생에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