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던 국제유가가 한 달여 사이 30% 넘게 자유 낙하하며 55달러 붕괴마저 위협하게 된 것은 지난달 초까지도 공급부족 우려에 뒤덮였던 시장이 공급과잉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바닥을 모르는 국제유가의 추락에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기둔화의 명백한 신호”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3일(현지시간) 미 경제매체 CNBC는 “불과 6주 전에 지난 2014년 이후 최고점을 찍었던 국제유가가 급락세로 돌아선 것은 유가 전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내년 초부터 원유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주요 산유국들의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1월 보고서를 통해 내년 원유 수요가 하루 평균 129만배럴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10월 보고서에서 제시한 내년 원유 수요 예상치인 136만배럴에서 7만배럴을 하향 조정한 것이다.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결정에 제동을 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에 이어 나온 OPEC의 수요 위축 전망에 이날 유가는 하루 낙폭으로는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7% 이상 급락했다.
국제유가는 올해 들어 지난달 초까지 미국의 이란산 원유 제재에 따른 공급감소 우려 속에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이달 6일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을 앞두고 산유량을 늘리면서 수급 전망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OPEC과 러시아 등은 2016년 말 감산 합의로 국제유가 반등을 이끌었지만 올 6월 감산 합의를 일부 완화하는 방식에 합의한 바 있다. 미국도 최근 몇 달간 하루 평균 1,1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구소련 시절 산유량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5일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제재와 관련해 8개국에 대해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를 면제하자 시장의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는 말끔하게 해소된 반면 공급과잉 우려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글로벌 금리 상승과 교역 악화, 신흥국들의 통화 약세 등으로 세계 경기둔화 전망이 불거지면서 원유 수요가 한층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CNBC는 인도·터키·인도네시아 등 최근 통화가치가 많이 하락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지속되는 달러화 강세도 국제유가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원유는 미국 달러화로 거래되는 만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그만큼 원유 수요자들의 매입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주가 폭락 등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커진 것이 유가 하락에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외신에 따르면 원유 선물가격이 올해 최고치를 경신하고 1주일 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상장된 종목의 3분의2가량이 고점 대비 10% 하락하며 조정에 들어갔다.
감산으로 가격을 방어하려는 사우디 등 OPEC 국가들의 시도도 트럼프 대통령의 제동에 가로막혀 힘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사우디가 다음달부터 하루 50만배럴을 감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와 OPEC은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유가는 공급을 기반으로 훨씬 더 낮아져야 한다”고 감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혀 유가를 끌어내렸다. 시장 일각에서는 OPEC의 감산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배럴당 50달러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유가 폭락이 주가 등 다른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공급과잉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언 윌리엄스 윌리엄스마켓애널리틱스 창립자는 “유가는 하락 쪽으로 과열된 상태”라며 “지금은 공급과잉 공포도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포럼(IEF)은 “당분간 미국의 이란 제재와 OPEC의 감산 등의 노력이 맞물려 유가가 60~80달러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횽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