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폭행 사건’이 성(性) 대결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현재 양측은 “여자가 머리 짧다고 폭행했다”와 “게이냐 등 먼저 시비를 걸었다”로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주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남혐·여혐이 현실공간에서도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15일 이수역 폭행 남성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청원인이 30만명을 넘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뼈가 보일 만큼 폭행당해 입원 중이나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사건은 남녀 갈등으로 비화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A(21)씨 등 남성 3명, B(23)씨 등 여성 2명을 포함한 총 5명을 쌍방폭행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전날 오전4시께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근처 주점에서 말다툼하다 쌍방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양측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점을 고려해 목격자 조사는 물론 폐쇄회로(CC)TV 분석을 병행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은 초기에 ‘여혐 폭행’ 논쟁으로 빠르게 옮아갔다. 청와대 국민청원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2명은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의 신원을 밝히고 무자비하게 피해자를 폭행한 가해자에게 죄에 맞는 처벌을 부탁드린다”고 썼다. 이를 두고 일부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혐 폭행’이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해당 청원 동의자 수는 게시 하루 만에 3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목격했다는 글이 이날 오전1시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사건은 여성 일행의 ‘남혐 조롱’이라는 새 국면을 맞았다. 글쓴이는 “당시 남자친구와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여성 일행이 먼저 ‘흉자X, 한남커플’이라는 말로 조롱했다”며 “일부 기사나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건을 여혐 사건이라는데 남성분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차츰 이수역 폭행 관련 당사자·목격자 발언이 속속 공개되며 이번 사건은 애초 여혐 폭행 사건에서 남녀 성 대결 양상으로 성격이 바뀌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면인 남녀가 주점이라는 공적 장소에서 남혐·여혐 발언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흔하지 않다”며 “그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집단으로서 남성·여성에 대한 혐오가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그 어떤 혐오 발언이 있어도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라며 “오늘날 남혐·여혐의 뿌리에는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사회 약자들의 분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초중등 시기에 젠더 감수성 교육을 강화할 때 남녀 상대 성에 대한 무지가 야기하는 혐오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