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급등했던 서울 아파트값이 1년2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정부가 대출 규제 및 세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9·13대책’을 발표한 지 약 2달 만의 일이다. 전국 집값도 3개월 만에 상승세를 마감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더 큰 문제는 거래절벽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계약 체결일 기준) 자료를 보면 일평균 거래 건수가 지난 9월 236건에서 11월1~14일에는 9.21건으로 25분의1 수준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까지 매수심리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거래절벽이 계속되는 등 약세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9·13대책’ 두 달 만에 서울 집값 하락=한국감정원이 15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자료를 보면 11월 2주(11월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01%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감정원 주간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을 기록한 것은 2017년 9월 1주(-0.01%) 이후 61주 만에 처음이다. ‘9·13대책’ 이후 상승 폭을 축소해온 서울 아파트값이 발표 후 두 달 만에 하락 전환한 것이다.
서울의 하락을 주도한 것은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다. 강남 4구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이번주에도 0.07% 떨어져 4주 연속 하락했고 송파구는 -0.10%를 기록해 강남 4구 중 낙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각각 0.09%, 0.05% 하락했다. 특히 -0.03%를 기록한 강동구는 5월7일(-0.05%) 이후 27주 만에 하락세를 맞았다. 동작구도 -0.03%로 집계돼 3주 연속 하락했고 0.01% 떨어진 서대문구는 하락 지역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선도지역인 강남권에서 시작된 하향 조정세가 비강남권으로 물결처럼 퍼져가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실제 강남권 주요 아파트의 경우 9·13대책 이전보다 호가가 2억~3억원가량 내린 곳이 적지 않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 76㎡는 9월 실거래가격이 18억5,000만원까지 올랐지만 최근 매도호가는 16억원대로 내려갔다. 대책 이전에 20억원을 넘었던 이 단지 전용 84㎡는 최근 18억 5,000만원까지 하향 조정됐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도 대책 이후 2억원가량 떨어지면서 전용 76㎡가 약 17억4,000만원을 호가한다.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244㎡도 9월 최고가(39억5,000만원) 대비 1억5,000만원 떨어진 38억원에 최근 손바뀜이 일어났다.
서경 부동산 펠로인 개포동의 고재영 씨티21공인 대표는 “매수자들은 더 떨어질 거라고 보고 사려고 들지 않는다”면서 “집주인들이 기존에 내놓았던 매물을 이제 버티지 못하고 호가를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권에서도 하락세가 퍼져가는 모습이다. 과천(-0.01→-0.04%), 분당(-0.01→-0.06%) 등은 지난주보다 낙폭을 키웠고 이번주에 광명(-0.01%), 고양 일산동(-0.02%), 일산서(-0.01%) 등이 새로 하락 지역에 편입됐다. 광명 철산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반적으로 수요가 많지 않아 몇 천만원씩 호가를 낮추고 있다”면서 “급한 집주인들은 이제 최고가격에 팔 수 있는 마지막 단계라는 판단에 그냥 정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요 지역의 하락세와 지방(-0.05%)의 침체가 맞물려 이번주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도 8월 2주 이후 13주 만에 하락으로 돌아서 -0.02%를 기록했다.
◇거래절벽은 더 심화, 이달 들어 일평균 9건 거래=‘거래절벽’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이달 들어 14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는 하루 평균 9.21건 이뤄졌다. 이는 9월 일평균 거래(236건)와 비교하면 약 96% 줄어든 수준이다. 9월 거래 중에서도 9·13대책 이전에 체결됐던 것이 5,480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즉 9·13대책에서 강화된 여신 규제가 수요자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이것이 거래절벽으로 이어지면서 집주인들의 호가 조정을 가져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거래절벽 현상 심화는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아파트 일평균 거래 건수도 9월 1,674건에서 10월 966.6건으로 줄더니 11월1~14일에는 291.7건으로 크게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변수와 연말 비수기가 겹쳐 적어도 올해 말까지 거래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국내외 경기가 올해보다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아 당초 예상보다 심리적으로 급격하게 얼어붙을 수 있다”면서 “올해 말까지는 거래 둔화와 가격 약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거래절벽이 깊어지고 호가 하락세가 계속돼 본격적인 하락장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강남권의 일부 중개사들은 아직 집값의 향방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있어 매수자들이 섣부르게 나서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잠실동 L공인 관계자는 “일부 재건축 단지의 가격이 크게 내린 것은 맞지만 구축 및 일반 아파트에서는 급매물 출현이 상대적으로 적다”면서 “시장의 방향을 읽기 어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뿐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했다.
/이완기·이재명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