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칼럼] 文대통령 임기 3할을 향한 시선…'벌써'와 '아직도'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직선제 후 全정권, 실망으로 귀결

現정부도 지지율 하락 현상 되풀이

미래 좀먹는 구조…개헌 등 논의를

文대통령 직접 갈등 해소 나서야

권홍우 위원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속성이 있다.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도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생각하고 말한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라쇼몽’에서는 귀신조차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믿음에 매달린다. 숫자나 기호도 마찬가지다. 해석과 입장에 따라 의미가 갈린다. 여기 두 가지 숫자가 있다. 1,826과 563.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826일 중 563일째를 지나고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보름 전에 임기의 30% 선을 넘겼다. 내년 달력을 넘기자마자 임기의 3분의1 선을 지나게 된다.

문 대통령의 임기에 대한 감흥 역시 입장에 따라 갈릴 수 있다. ‘벌써, 그만큼’과 ‘아직도 그것밖에’라는 두 가지 가운데 어떤 의견이 많을까. 전자가 다소 많다. 지지율이 말해준다. 문 대통령을 반대하는 의견보다 지지하겠다는 의사가 더 우세하다. 하지만 급락하고 있다. 임기 초반과 비교하면 반 토막에 가깝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야당의 정치 공세와 기득권 언론 탓’으로 여긴다면 오만이고 오산이다. 임기 초중반 이후 지지율의 하락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시행된 지난 1987년 이후 지금까지 6명의 대통령이 예외 없다. 둘이 탄핵 소추를 받아 한 명은 임기를 도중에 마치고 감옥에 갇혔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초반의 기대가 늘 실망으로 끝났다. 지지율 추세로만 따지면 이번 정부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계열의 정권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기대의 끝은 실망이었다. 열망을 넘어 촛불로 상징되는 갈망을 디딤돌 삼아 출범한 문재인 정부마저 같은 추세를 보일 기미를 보인다니 안타깝다.


직선제 개헌 이래 등장한 7명의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했다면 정치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어느 정당의 어떤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도 결과가 똑같아질 수 있다면 나쁜 구조, 우리의 미래를 갉아먹는 구조라는 얘기가 된다. 풍수지리의 표현을 빌리면 흉가(凶家)에 짓눌린 형국이다. 흉가를 고쳐 반듯한 새집으로 만들려는 노력, 즉 정치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임기와 지역감정 약화를 유도할 중대선거구제, 사표 방지를 위한 비례명부제 도입을 다루기 위한 개헌 및 선거법 개정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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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은 임기 초중반 개헌 논의를 꺼려왔지만 세월은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레임덕이 빨리 올 수 있다는 계산으로 개헌 논의를 마다했던 역대 정권의 말로는 익히 아는 대로다. 시간이 없다. 경제적으로는 더더욱 여유를 부릴 여지가 크지 않다. 미중 무역마찰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수출 국가 한국’의 기반이 흔들리는 양상이다. 햇수로 집권 3년 차에 접어들 문재인 정부가 떠안은 책무는 실로 막중하다. 각종 개혁과제와 북핵 문제·한반도 평화 정착을 진행하는 동시에 경제난국을 돌파하고 새로운 정치구도를 짜는 데 ‘선량의 관리자’로써의 역할까지 맡을 판이다. 과제물이 산적했다면 결과는 두 가지로 예측할 수 있다. 제대로 이행 못할 경우 한국은 더욱 불행해진다. 지지율이 빠지고 각종 개혁과제도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희망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다. 특정정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다.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과제들을 풀어나갈 것인가. 갈등 속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사회갈등의 사익적 요소들을 억압하지 않고 정당을 통해 복수의 공익적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합의를 만들어내는 결정구조”다. 미국의 정치학자 EE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 주권’에서 갈등은 나쁜 것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민주주의 엔진’이라고 불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은 단 하나의 행위에 갇히고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희생자로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갈등을 극복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정치는 변화무쌍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여야가 극적 합의를 이루고 국회를 정상화시켰다. 잘한 일이다. 국민들은 이런 일에 박수를 친다. 문 대통령도 이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야당과 자주 만나고 필요하다면 탈원전 정책의 수정도 검토해야 마땅하다. 임기 3할을 넘긴 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민족의 염원을 풀고 경제난국을 극복하며 새로운 정치구조를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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