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무역정책의 지형도를 바꿔놓으면서 세계 정상들이 공동 발표하는 선언문에서 ‘보호무역 반대’라는 문구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달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O)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입수한 공동성명 초안에서 ‘보호무역 반대’라는 명시적 문구가 빠졌다고 보도했다. 수입품에 관세나 비관세장벽을 쌓는 보호무역에 대한 반대 결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08년 11월 G20 정상회의가 출범한 후 10년간 공동성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단골 의제였다. FT는 G20가 “보호무역주의 반대라는 문구 대신 ‘다자 간 무역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또는 ‘시장 개방과 공정한 경쟁의 장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같은 문구를 넣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G20 공동성명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보호무역주의 반대’ 문구가 배제된 것은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충돌을 피하려는 다른 참가국들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 G20 정상회의와 지난 6월 캐나다 퀘벡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 용어에 반감을 나타내며 참가국 정상들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최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보호무역주의’ 언급에 반대하는 미국과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라는 문구에 발끈한 중국의 반발 속에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에 저항한다는 결의가 최종 공동성명에서 빠질 경우 국제교역의 미래에 나쁜 신호를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채드 보언 선임연구원은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롤모델로 삼는다”며 “(미국의 행태가) 새 롤모델이라면 앞으로 각국은 알아서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기간인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 정상회담 최고위급 회의 참석자 명단에서 대중 ‘매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밝힌 뒤 “양국 정상회담의 최고위급 저녁 모임 자리에 나바로를 배제하기로 한 것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과 관련해 진전을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중국이 전날 미국 항공모함의 홍콩 입항을 허용하자 미국이 대중 강경파인 나바로를 명단에서 제외했다며 양국이 긴장관계 해소를 위한 화해의 제스처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