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동맹국 정부 관계자와 통신 업체 임원들에게 사이버안보 우려를 제기하며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이례적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WSJ에 “통신 기간시설에 대한 사이버 위협 가능성을 놓고 세계 각국과 접촉하고 있다”면서 “5G를 추진하는 곳에 그런 우려를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에 대한 협조를 특히 미군이 주둔한 나라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져 한국 정부에도 유사한 우려를 전달했거나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WSJ는 동맹국들을 상대로 한 미국 정부의 브리핑 목적에 대해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에 화웨이 부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세계 각국의 무선·인터넷통신 업체들이 차세대 통신망인 5G 구축을 위한 관련 장비 구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중국이 화웨이 장비를 통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통신을 불능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이 동맹국에 화웨이 경고등을 켠 것은 자국으로 화웨이 장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작전의 전선을 해외로 확장한 것이라고 WSJ는 해설했다.
화웨이는 세계 2위 스마트폰 판매 업체이자 휴대폰 기지국이나 인터넷 네트워크 구축 등에 필요한 통신부품 및 장비에서 세계 선두권 기업으로 지난 2012년 미국 의회 보고서에서 염탐이나 통신방해 우려가 있는 국가안보 위협으로 적시된 바 있다.
미국은 이미 화웨이뿐 아니라 ZTE 등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연방정부의 관련 제품 구입을 금지했으며 통신사인 AT&T와 버라이즌에 화웨이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WSJ의 보도에 화웨이 측은 “(미국의) 이러한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행동이 해당 관할범위를 넘어설 경우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한편 미국은 자국의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수출·이전되는 것을 강력히 규제하기 위해 중국인 과학자들의 미국 입국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이 일부 중국인 과학자들에게 발급된 10년 기한의 복수비자를 무효화했다며 한 중국 연구원의 사례를 전했다. 복수비자를 받으면 일정 기간 추가 신청 없이 미국을 여러 차례 입국할 수 있는데 비자 발급절차를 까다롭게 해 중국 과학자들이 미국 첨단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며 감시를 강화했다는 관측이다. 미국은 지난 6월에도 로봇·항공 등 신기술을 연구하는 중국인 대학원생들의 비자 기한을 최대 5년에서 12개월로 단축한 바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들은 미중 무역전쟁의 또 다른 전선으로도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과 기술 침해를 문제 삼아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제한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기술굴기를 겨냥한 ‘중국 제조 2025’에서 물러서지 않자 최근 중국의 기술침해 및 대응조치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