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거래에 대해 두 개 이상의 회계처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는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원칙중심 회계기준과 회계’ 특별 세미나에서 “원칙중심의 회계기준하에서 회계감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칙중심의 기준이 존중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 확보와 코리아디스카운트 완화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11년 단계적 수용이나 컨버전스가 아닌 전면도입의 ‘빅뱅(Big Bang)’ 방식으로 도입됐다. 정부는 2006년 2월 ‘IFRS도입준비단’을 구성해 검토과제와 추진방안을 논의했으며 2007년 3월 ‘IFRS 도입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후 2009년 3월에는 IFRS 도입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관련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IFRS정착추진단을 구성해 2010년 11월까지 운영했다.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10년 넘게 IFRS 도입을 준비해온 셈이다.
IFRS의 핵심가치는 원칙중심 회계처리다. IFRS 도입 전 원칙중심 회계처리가 기업들에 유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 목소리와 함께 원칙만 제시하다 보니 구체적인 회계처리 방향을 기업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부담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제기됐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회계처리가 고의 분식회계로 결론 나면서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도 삼성바이오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 중에는 원칙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의) 평가이익 인식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원칙중심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불안감을 줄이려면 회계처리의 다양성뿐 아니라 기업의 다양성 등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는 “감리당국이 특정 사안에 대해 강력한 규제 동기를 갖게 될 경우 사후적 결과를 중심으로 원칙중심 처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기업이나 감사인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며 “규제기관은 기업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리제도를 개선해 기업과 감사인의 불안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 교수는 “사후적발 위주 규제에서 예방적 감독체제로 개편하고 주석공시 사항이 명백한 오류가 아닌 이상 감리 대상이나 기타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되며 공시되지 않은 항목이라도 재무제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명백하게 고의로 누락한 것이 아닌 이상 제재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감리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일 가톨릭대 교수는 “감리제도 논란에서 원칙이 아닌 규정중심, 결과가 개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풀어야 할 과제 같다”며 “원칙중심 기준하에 불확실성·회색지대가 있다가 어느 순간 사후적으로 가혹하다고 느낄 경우 감리에 대한 불신이 쌓일 수 있다”고 밝혔다.
원칙중심 회계처리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감독당국 내 회계 관련 부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일관된 감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기업들의 원칙중심 회계처리에 대한 전문성 제고와 도덕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손영채 금융위 공정시장과정은 “사후적발 위주의 규제 등에 대한 편견 우려를 감안해 더 좋은 감독지침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회계법인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가치 평가를 부풀렸는데도 적절한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반박했다. 2015년 당시 삼정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삼성바이오 기업가치 산정 보고서는 재무보고 목적이 아닌 내부 참고자료였기 때문에 감독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기업 평가 보고서를 국민연금이 확보한 경위나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법에서 정한 금융당국의 권한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