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진지한 공론화 필요한 기본소득제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동아대학교 석좌교수

최저임금 인상 등 무리수에도

정작 소득분배는 악화일로 걸어

기존 복지 프로그램 대폭 줄이고

새로운 정책 대안으로 고려할 만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소득주도 성장 전략의 추진에도 소득분배가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지금이야말로 모든 국민의 최소생활 수준을 확실히 보장하면서 재분배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본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한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문헌이 최근 급증하고 있고 세계 경제계 핵심인사들의 모임인 2018 다보스포럼(WEF)에서도 기본소득제에 대한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기본소득제는 자산조사나 근로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지급되는 주기적 현금급여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영국의 클리퍼드 더글러스는 1924년 ‘사회적 신용’에서 모든 근로자에게 기술발전에 따른 상여금을 기본소득 형태로 나눠줄 것을 주장했다. “기술은 총생산과 근로소득과의 격차를 유발하기 때문에 정부는 모든 시민에게 ‘국가적 배당’을 지급함으로써 그 차이를 상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 후 기본소득제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시됐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인디애나주와 시애틀·덴버시에서 시범사업이 실시됐고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대다수의 참가자가 주어진 기본소득을 낭비하지 않았고 자녀의 취학률 역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역시 비슷한 형태의 시범사업을 19개 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지난 2008년과 2013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시범사업이 추진됐는데 수혜자의 상당수가 자영업을 시작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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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인도에서도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결과 역시 긍정적이었다. 기본소득제 실시 후 대상 가구의 식품 소비가 늘었으며 건강 상태가 개선됐고 68%의 가구에서 자녀의 학교 성적이 올랐다. 자녀들은 더욱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가구 저축이 3배나 늘었으며 자영업체 수도 2배로 증가했다.

기본소득제는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지지 세력이 있다.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이를 지지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제야말로 저소득층의 복지를 증진하면서 근로의욕 감소 등 전통적 복지시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또 기본소득제는 모든 시민의 ‘사회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회보장제도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보수성향 인사들은 제도가 단순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를 지지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면서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사재를 투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예컨대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미국의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는 “기본소득제는 재분배를 이룰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논리로 기본소득제를 지지하고 있다. 벤처기업가 샘 올트먼은 2016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에서 주민에게 월 1,000달러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사비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장점에도 아직 많은 나라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저하는 것은 추진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 부담 때문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소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나 증세 가능성을 동시에 언급하면 지지율이 35%로 낮아졌다. 그러나 기본소득제 실시에 필요한 추가재원 중 상당 부분은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을 폐지 또는 축소 조정함으로써 조달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도입된다면 최저임금제 등 소득보장 성격의 시장 개입 정책들은 물론 근로의욕 감퇴를 야기하는 공공부조·실업수당 등의 정책 역시 폐지 또는 대폭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기본소득제가 도입된다면 더욱 과감한 연금개혁도 추진할 수 있다. 또 미성년자 대상의 기본소득제는 포괄적 아동수당의 역할을 함으로써 출산장려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제에 대한 공론화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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