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 커머스시에 연간 생산 9.8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1조1,396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신규 배터리 공장은 커머스시 일대 약 112만2,000㎡ 부지에 들어서게 되며 내년 초 착공해 오는 2022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지 법인인 ‘SK 배터리 아메리카(가칭)’를 설립하고 해마다 분할 출자 형태로 건설비용 등을 조달할 계획이다. 조지아주는 미국 내에서 ‘제조업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최근 6년 연속 ‘기업 하기 좋은 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록히드마틴 등 미국 기업은 물론 인도의 타타그룹, 한국의 기아자동차와 한화큐셀도 진출해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짓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독일의 완성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의 미국과 유럽향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돼서다. 수주한 만큼 설비를 늘려가겠다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 원칙이 이번에도 적용된 셈이다. 현재 폭스바겐은 미국 테네시주 차타누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중형세단 파사트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틀라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이 이미 전기차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만큼 미국 공장 역시 점진적으로 전기차 생산 기지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헝가리에 유럽 공략 기지를 짓고 있는 SK이노베이션으로서도 미국 현지 배터리 생산시설을 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최근 재협상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으로 북미 지역 내 생산시설을 두는 것이 필수조건이 됐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나프타에 따르면 북미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부품 비중을 75%까지 높이고 미국 수준 임금인 시간당 16달러 이상을 받는 노동자가 생산한 부품을 40% 이상 사용해야 무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이나 중국·유럽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미국 내 판매되는 차량에 더 이상 장착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북미 지역에 공급 물량을 확보한 상태에서 앞으로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전초기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이 미국 남동부 지역에 배터리 생산 시설을 두면서 단순히 폭스바겐만을 겨냥하지 않고 앞으로 이 지역에 집중된 BMW, 다임러, 볼보,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에 건설하는 미국 배터리 공장을 비롯해 오는 2022년까지 연간 생산량 55GWh 규모의 생산설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4.7GWh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딥체인지 2.0에 기반해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주요 시장에 생산 거점 확보 및 수주 증대를 적극 추진해왔다”며 “글로벌 자동차 최대 격전지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둬 제2의 반도체로 평가받는 배터리사업에서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