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한파 속 롱패딩 열풍…처참히 뜯겨나간 '거위의 꿈'

핫한 이슈를 친절하게 풀어주는 '그래픽텔링'

거위·오리 살아있는 채로 최대 15회 털 뽑히다가 죽기도

동물보호 인식 확산에…'비건 패션' 트랜드로 자리잡아

테디베어퍼·뽀글이퍼 등 인공 충전재로 만든 의류 봇물




저에게는 사계절을 날 수 있는 가볍고 따뜻한 옷이 있습니다. 사는 곳이 물가 주변이라 보온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힘센 사람들이 와서 저와 가족들, 주변 이웃들의 멱살을 잡고선 옷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발버둥치며 비명을 질러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제 친구는 심하게 반항하다가 살갗이 찢겨 목숨을 잃기도 했죠.

‘이번 한 번만이겠지’ 겨우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옷을 구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두 달 뒤 또 찾아와 제 뒷덜미를 낚아채곤 옷을 빼앗아 갔으니까요.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폭력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것은 겨울의 필수템이라 불리는 ‘구스다운’의 주인공, 거위의 이야기입니다. 거위의 목과 가슴에 있는 부드러운 솜털 즉, 다운(Down)은 가볍고 따뜻해서 겨울옷, 이불, 베개 안의 솜으로 많이 쓰이죠.

지난해 한반도에 최강한파가 불어 닥쳤을 땐 다운으로 만들어진 패딩이 불티난 듯 팔렸습니다. 특히 평창올림픽 시즌엔 한정판 제품이 나오자 밤새 백화점 문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겨울철 패션 업계 효자템이라 불리는 다운패딩,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식용이나 산란용으로 사육되는 오리와 거위는 보통 생후 10주부터 솜털을 뜯기기 시작합니다.

‘뽑고 다시 자라나면 또 뽑고’ 이 과정은 6주 간격으로 이뤄지는데요.



한 마리의 거위에서 나오는 깃털과 솜털은 최대 140g정도로 우리가 입는 패딩 한 벌을 만들려면 보통 15~20마리의 털이 필요하죠. 한 동물단체 조사에 따르면 거위와 오리는 일생동안 최소 5번에서 최대 15번이나 털을 뽑힌다고 합니다.



죽은 조류의 털로 만드는 것 아니냐고요?

미국다운페더연합(American Down And Feather Council)에 따르면 전 세계 오리털과 거위 털의 80%는 중국에서 생산되는데요.



매년 거위와 오리들은 수 천 톤에 달하는 털을 살아있는 채로 뽑힙니다.

왜냐고요?

사체에선 단 한 번 털을 뽑을 수 있지만 산 채로 두면 마리당 최대 15번까지 뽑을 수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생명의 존엄성을 따지기보단 경제적 가성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영하의 추위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패딩. 하지만 이 한 벌의 구스다운이 탄생하기까지 희생된 거위의 비명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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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사람들(PETA)’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당신이 걸친 모피의 진실’ 동영상 중 캡처 화면./사진=PETA 공식 유튜브 계정국제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사람들(PETA)’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당신이 걸친 모피의 진실’ 동영상 중 캡처 화면./사진=PETA 공식 유튜브 계정


그런데 2010년 독일의 동물 복지운동단체 포포스(Four Paws)가 헝가리 거위농장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다운 생산과정의 잔인함이 세계에 알려지게 됐죠.

동물 학대 논란이 확산되자 의류 제조업들은 앞다퉈 윤리적 생산에 나섰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먼저 인조 모피 등으로 옷, 가방을 제작하며 비건 패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2015년 ‘스텔라 맥카트니’, 2016년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이어 2017년 ‘구찌’도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퍼 프리’(Fur Free) 선언을 했죠.

4일(현지 시간) 샤넬 또한 앞으로 동물의 털과 희귀동물의 가죽으로 상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동참했습니다.

특히 패딩계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업계가 나서서 ‘책임다운 기준(Responsible Down Standard)라는 인증마크를 도입했습니다.



RDS란 살아있는 조류의 깃털을 강제로 채취하는 비윤리적인 동물 학대를 하지 않고, 사육, 도축, 세척 및 가공 등 깃털 생산부터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는 글로벌 인증인데요.

현재 아디다스, 리복,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등 40여개의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RDS 인증을 받은 전 세계 1,200여곳 사육장의 약 5억 마리 조류로부터 털을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합니다.

이처럼 젊은 소비자들의 동물윤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입는 채식주의’ 즉, 비건 패션(Vegan Fashion) 열풍도 함께 불고 있습니다.

모피나 가죽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소재를 사용하는 패션을 말하는데요.

동물 털 대신 나일론, 폴리에스터, 신슐레이트, 웰론 등 인공 충전재로 만들어집니다.

거위나 오리털처럼 보온성이 좋으면서도 눈과 비에 강할뿐더러 무엇보다 가격이 1/20~1/50에 불과하다는 장점이 있죠.

일부 브랜드에선 폐자원을 활용해 리사이클 제품을 생산하기도 하고요.



이 때문에 이번 시즌엔 일명 ‘테디베어 퍼’ ‘뽀글이’ 등으로 불리는 페이크 퍼(Fake Fur)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환경보호와 동물 복지까지 생각하는 ‘가치 소비’에 나선 소비자들. 올겨울엔 여러분도 세상을 바꾸는 소비에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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