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5일 오후 제주도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원 지사는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진료과목을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의 과로 한정했고,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 지사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고려해 도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취지를 고려해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를 앞으로 해소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조건부 개설 허가의 취지와 목적을 위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허가 취소 등의 강력한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개설을 허가한 이유와 관련해 제주도는 국가적 과제인 경제 살리기,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언급했다. 투자된 중국 자본이 손실될 경우 발생할 한·중 외교 문제, 행정 신뢰도 추락으로 인한 국가신인도 저하, 사업자 손실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등도 제주도가 제시한 이유다. 현재 병원에 채용된 직원 134명의 고용 문제, 토지의 목적 외 사용에 따른 토지 반환 소송의 문제, 병원이 프리미엄 외국 의료관광객을 고려한 시설로 건축돼 타 용도로의 전환이 불가한 점 등 현실적인 문제도 걸려 있다.
제주 영리병원 도입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11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이 통과되며 시작됐다. 특별법 통과로 제주도에는 외국인이 설립한 영리 병원의 설립이 허용됐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서귀포시에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하고, 중국 녹지그룹을 유치해 영리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유한회사)의 국제병원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녹지제주유한회사는 지난해 7월 28일까지 총 778억원을 투입해 녹지국제병원을 짓고 의사 등 인력 134명(도민 107명)을 채용했다. 그리곤 한 달 뒤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2017년 11∼12월 진행된 네 차례 심의회를 통해 ‘외국인 의료관광객에게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둘러싸고 도민 간의 찬반 논란이 거세지자 원 지사는 결정을 미루고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공론조사위원회는 제주 시민들의 여론을 종합해 지난 10월 4일 도에 ‘녹지국제병원 불허’를 권고했다.
그러나 원 지사가 공론위의 권고를 거부함으로써 논란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 반대 목소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부 단체들은 원 지사가 도민을 배신했다며 원 지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한때 도청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 도청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