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몰락은 경제적 불평등 심화의 주범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될 만큼 심각한 문제다. 2020년 차기 민주당 대권 후보로 지목되는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역시 중산층 몰락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이들 중 하나다. 하버드 법대 파산법 전문 교수를 지냈으며, 상법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하나인 그가 쓴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는 남녀 3명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미국 중산층 몰락의 실상을 생생하게 르포르타주했다. 이 책은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던 전작 ‘싸울 기회’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으로 그가 그동안 실천해온 ‘책임있는 자본주의’의 투쟁사이기도 하다.
워런이 전하는 르포르타주는 참담하다. 그중에서도 대학을 나온 50세 여성 지나, 20대 여성 카이, 50대 흑인 남성 마이클 등 몰락한 중산층의 이야기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가계 소득이 7만 달러를 올리던 중산층이었으나, 이제 부부 수입은 3만6,000달러로 반토막이 났고, 가족은 매월 무료 급식소를 방문한다. 카이는 ‘흙수저’에서 중산층의 사다리를 올라타려다 좌절한 경우로 대학 진학을 위해 학자금 융자를 10만 달러나 받았다가 대학의 비리와 사정 등의 악재가 겹쳐 졸업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마이클은 일반적인 경제적 문제에 흑인이라는 짐까지 보태져 가중된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는 DHL에서 16년간 정규직으로 근무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해고됐다. 이후 운이 좋아 복직했지만, 회사가 제안한 건 비정규직이었고 이전의 풍족했던 삶을 누릴 수는 없게 됐다.
워런은 이 세 사람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객관적인 수치로 이들의 고통을 객관화한다. 데이터를 통해 이들의 고통이 그저 감정에 의한 호소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이를테면 전일제 근로자의 경우 백인이 1달러를 벌면 흑인은 59센트를 벌고, 백인이 대학을 졸업할 경우 수입은 11~13달러로 증가하지만, 아프리카계는 단지 1달러만 증가한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백인과 흑인 간의 소득 불평등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미국의 중산층을 죽이는 가장 위험한 ‘부패’로는 낙수경제 효과라는 공약을 꼽았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게 됨을 의미하는 낙수효과는 실상은 거짓이며, 감세는 경제를 부흥시키니 못한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워런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낙수경제라는 ‘거짓말’을 데이터를 통해 반박하면서 “이 거짓말은 레이건에서 시작돼 38년 동안이나 미국 사회를 지배했지만, 여전히 사라질 기미조차 보지 않고 있다”고 통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런은 절망에 빠져만 있어선 안된다고 당부한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싸워야 하며, 정말 싸워야 할 때가 지금”이라며.
2020년 차기 대권 주자답게 워런은 “트럼프 때문에 미국인에겐 정말이지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날을 세운다. 그의 반(反)트럼프 전략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편견과의 전투 △경제가 상위 10%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만들라고 크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것 △이 싸움은 집단의 싸움임을 분명히 할 것 등 이다.
“소득불평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처럼 싸워야 한다”는 워런의 목소리는 비단 미국인에게 적용될 경고만은 아니다. 우리 또한 ‘누구도 나를 위해 싸워 주지 않는 현실’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책임있는 자본주의’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1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