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꿀벌처럼 살자!

연세대 철학과 교수

<88>인생의 유형

인간 본성엔 이타·이기심 혼재

남을 도울 때 행복감 더 높아져

자기 앞가림에 급급한 개미보다

협동하는 꿀벌 같은 존재 필요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볼 때가 있다. 두 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지난 198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수백 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토막살인한 죄수가 가석방된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전해지자 난리 법석이 났다. 이 죄수는 법정에서 수백 년의 감옥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그때부터 이 죄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행형 성적이 1등이다. 청소면 청소, 예배면 예배 모든 면에서 다른 죄수의 모범이 되기 충분하다. 감형에 감형이 거듭되더니 결국 가석방된 것이다. 출소하던 감옥 앞에는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온갖 무기를 들고 다 나섰다. 감옥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인간이 나온다는 소식에 총궐기한 것이다. 그 죄수를 태운 중무장한 장갑차가 감옥 문을 나서자 차들이 뒤따라 다니면서 무선으로 어디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연락을 취한다. 그러면 마을 입구마다 사람들이 나와 자기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그 죄수는 다시 장갑차를 탄 채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주지사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람이 신문에 좀 특이한 광고를 낸다. “자신의 인육을 식량으로 제공할 사람을 찾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엽기적 광고를 냈으며 도대체 누가 이런 미친 광고에 응할까. 놀랍게도 6명이 그 광고를 보고 찾아온다. 광고를 낸 사람은 6명을 앞에 놓고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당신들을 편안하게 죽도록 해주겠다. 그러고 난 후 시신을 토막 낼 것이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시간 나는 대로 먹어 치우겠다.” 자, 이 설명을 들은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마지막 결심의 순간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돌아간다. 다만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은 결국 전기톱 신세를 진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여전히 시신의 일부가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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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거미, 개미, 그리고 꿀벌이다. 첫째, 거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운다. 튼튼한 줄로 먹잇감들을 옭아맨 다음 서서히 고사시키는 전략이다. 거미는 자신 외의 것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철두철미하게 이기적인 존재다. 거미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둘째, 개미는 먹을 것을 열심히 날라 모아둔다. 여름 내내 놀고 지내는 베짱이와 달리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이 개미다. 그렇다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법은 없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한 존재다. 개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다. 셋째, 꿀벌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번식을 돕는다. 식물의 대부분은 꿀벌이 없으면 번식이 어려운 상황에 들어간다. 그리고 꿀벌은 외부에 없는 식량, 즉 꿀을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창조적 활동을 한다. 꿀벌은 ‘반드시 있어야 할’ 이타적 존재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이 비유적으로 분류한 인간의 유형이다.


베이컨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의 살인마야말로 진정한 거미에 해당한다. 애당초 살아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살인마가 뉴스에 나오는 것은 그만큼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꿀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도움을 주는 존재도 역시 흔하지 않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개미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면서 조용히 ‘소확행’을 즐기는 개미 같은 시민들이 개미일 거다. 하지만 인간이 과연 정확하게 거미·개미·꿀벌로 분류될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사람의 내부에는 그 셋이 혼재해 있지 않을까.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직 내에서도 거미처럼 행동하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개미처럼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할 때도 있고, 꿀벌처럼 남을 돕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꿀벌처럼 서로 도움이 되는 조직에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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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린 학생들에게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면 남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당연히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해야 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질문이 하나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 아니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 당연히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 할까. 당연히 도움을 준 사람이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고.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 같이 꿀벌처럼 살자.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하는 것, 꼭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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