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카 트럼프 부부와 같은) 울트라리치(ultrarich)는 각종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워싱턴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진입을 앞두고 맏딸인 이방카와 그의 남편 재러드 쿠슈너의 무소불위 권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족벌정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각각 백악관 보좌관과 선임보좌관 자리를 꿰찬 30대 ‘퍼스트도터’ 부부가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한 각종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e메일 스캔들’과 ‘러시아 게이트’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서도 가볍게 법망을 빠져나가며 사실상 워싱턴 정가의 ‘넘버 2’로서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트럼프의 비서실장이 되려면 필요한 것은? 재러드와 이방카의 승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방카와 쿠슈너가 올해 말 백악관을 떠나는 존 켈리 비서실장의 후임 선발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 물색과정에서 고려하는 여러 선발기준 가운데 충성도와 정치적 노련함, 운영경험 외에 필수적 잣대는 바로 이들 부부의 ‘OK 사인’을 얻는 것”이라고 전했다.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제어하는 백악관 내 ‘군기반장’ 역할을 해온 해군 장성 출신의 켈리 비서실장 교체에도 이들 부부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방카 부부가 쿠슈너의 기밀정보 취급 권한을 강등하는 등 자신들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그를 몰아내고 후임으로 우군이 될 만한 인사를 앉히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판에 틀어지기는 했지만 한때 후임 비서실상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36세의 닉 에이어스 카드 역시 이방카 부부의 작품이라는 게 정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등에 업은 이방카 부부의 힘은 지난 2년간 각종 스캔들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들이 여전히 굳건한 입지를 유지하며 규칙과 법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백악관 입성 당시부터 패션사업의 이해상충과 친족등용 등의 논란을 몰고 다닌 이방카는 최근 ‘e메일 스캔들’로 또 한차례 구설에 올랐다. 이방카가 자신의 개인 e메일 계정으로 백악관 공무를 본 사실이 드러나자 미 언론들은 이 사안을 지난 2016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공무수행 과정에서 개인 e메일 서버를 이용한 사실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e메일 스캔들’과 비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힐러리 전 장관의 e메일 스캔들을 거세게 비난하며 클린턴을 향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당신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방카는 자신과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에는 “같은 점이 없다”며 자신의 행동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나서 “이방카의 e메일은 클린턴처럼 기밀로 분류되지 않았으며 클린턴처럼 메일을 삭제하지도 않았다”고 옹호했다.
이방카의 이 같은 ‘내로남불’식 태도와 관련해 백악관 안팎에서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의회 담당 수석보좌관을 지낸 마크 쇼트는 “아이러니할 뿐 아니라 위선적이고 좋지 않은 일”이라며 “실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힐러리 전 장관의 대변인 출신인 닉 메릴은 “이방카는 법규 위반 건수가 ‘0’건이라는 미 법집행기관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e메일 사건으로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의 딸”이라며 “둘 다 어리석은 스캔들이지만 이방카의 경우 그 위선적인 면 때문에 철저한 조사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쿠슈너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는 ‘러시아 스캔들’의 몸통 의혹과 투자유치 활동 과정에서 외국 기업에 거액대출을 추진하는 등의 이해상충 논란으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았지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쿠슈너는 대선 과정에서 클린턴 전 장관에게 타격을 가할 정보를 주겠다는 러시아 변호사 나탈리 베셀니츠카야,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 등과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연방수사국(FBI)에 위증을 한 혐의로 뮬러 특검에 기소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마저 “쿠슈너로부터 러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음에도 쿠슈너는 법망을 비켜가는 모습이다. 쿠슈너의 노골적인 친(親)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행보도 논란거리다. 유대인인 그는 지난해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이 나오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8일에는 쿠슈너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향후 닥쳐올 ‘풍파’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조언해왔다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쿠슈너는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를 직접 지시했다는 결론을 낸 후에도 왕세자의 옹호자 역할을 했다고 NYT는 전했다.
앞서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 감세정책의 일환인 ‘기회특구’ 프로그램으로 쿠슈너 일가 소유의 부동산 가운데 최소 13곳이 세제혜택을 보게 됐다”며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뛰어 막대한 잠재이익을 얻게 됐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방카 부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제노포비아적 이민정책을 중단시키거나 막기 위해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며 “퍼스트도터 부부가 진짜 정부관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