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시리아 철군 결정 이후 무주공산이 된 시리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세력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터키군이 주말에 이어 24일(현지시간)에도 시리아 북부 만비즈 주변 국경으로 장비와 병력을 수송했다고 전했다. 주말 동안 터키군은 차량 200대 규모로 시리아 내 전력을 보강했고 이날도 곡사포와 포병대가 남동부 킬리스주 엘베일리에 추가 배치됐다. 터키가 만비즈를 비롯한 시리아 북부 공격을 시행할 경우 지난 2016년의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과 올해 초 ‘올리브가지 작전’에 이어 세 번째 시리아 군사작전이 된다. 터키군의 병력 보강은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트위터를 통해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우리가 이겼다”며 철수 방침을 밝힌 뒤 불과 며칠 만에 단행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리아 지역의 주도권 장악을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맞서 시리아민주군(SDF)도 미군의 공백을 틈타 시리아를 선점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터키 국영 테레테(TRT) 방송은 터키군에 맞서 쿠르드·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도 만비즈로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이라크도 IS 등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겠다며 시리아에 파병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쳐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아딜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이날 “시리아 국경 너머의 위협으로부터 이라크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선택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지렛대 역할을 해온 미군이 빠지자 러시아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알아라비야는 이날 러시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시리아의 쿠르드 정치세력인 ‘시리아민주평의회(MSD)’가 모스크바로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MSD는 수니파 무장조직 IS 격퇴전의 지상군 부대인 SDF의 정치조직이다. MSD 고위소식통도 시리아 북부 쿠르드 반자치기구 외교위원회 공동의장인 압둘 카림 오마르가 이끄는 대표단이 며칠 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외신은 러시아가 터키와 쿠르드 점령지 경계에 시리아 친정부군을 배치해 터키군의 공격을 차단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MSD는 아직 이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MSD 대표의 러시아 파견과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쿠르드에 보호막을 제공하는 대신 시리아 북동부의 통제권을 러시아가 지원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에 넘기라고 제안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 경우 친정부군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란군 세력이 요충지인 이라크·시리아 국경을 비롯한 시리아 북동부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시리아 쿠르드의 연방체제 수립에 대한 열망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다. 현재 MSD는 시리아 정부군이 아닌 러시아군의 통제를 받는 국경수비대 배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MSD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 직후 프랑스에도 공동의장을 파견해 시리아 문제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역할 확대를 요청한 바 있다.
미군은 당장 철수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23일 시리아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 2,600여명에 대한 철수명령에 서명했지만 철군 작업은 내년부터 천천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완전철수 때까지 상황에 따라 최대한 군사력을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와 터키 정부는 미군의 철군을 놓고 찰떡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터키 대통령실의 이브라힘 칼른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주 중 미군 대표단이 터키를 찾아 (철수 문제를) 터키군과 어떻게 조율할지 논의할 것”이라며 “터키는 변함없이 확고한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칭) 소탕 의지를 보일 것이고 그 지역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칼른 대변인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대를 수락했다”며 “방문 시기는 내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