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방영된 JTBC 드라마 ‘SKY캐슬’ 6화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사 강준상(정준호 분)을 칼로 위협한다. 환자를 피해 코미디 드라마처럼 여자 화장실로 숨어든 준상은 결국 자신이 소지한 가스총을 꺼내 든다.
의료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신감을 반영한 장면이지만 의료계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국민 생명을 다루면서도 폭력에 위협받는 의사들의 열악한 현실을 조롱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방송 후 SKY캐슬 측에 사과와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지난달 31일 오후 5시44분쯤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가 담당 환자 박모(30)씨의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SKY캐슬에 대한 의료계의 분노는 더 커졌다. 임 교수는 마지막까지 간호사를 대피시키느라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하여 의료기관 내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동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송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Y캐슬 제작진을 정면 겨냥했다.
의협은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 뒤를 쫓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바 있다”며 “이번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시청자로 하여금 의료진에게 폭언·욕설을 하거나 진료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각을 세웠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16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사 중 96.5%가 환자에게 폭력 및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 환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정신적 후유증을 겪은 의사도 91.4%로 나타났다. 현재 ‘의료인 폭행방지법’에 따르면, 의료진을 폭행하거나 협박해 응급의료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의협은 폭행당한 의료진이 이미지 추락을 우려해 수사기관에 신고를 꺼리는데다 ‘솜방망이 처벌’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더 강력한 대책을 요구 중이다. 의료진에 대한 폭력으로 선량한 일반 환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안전한 진로환경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일 오후3시 현재 3만6,000명 가량이 동의한 상태다.
SNS상에서는 이번 사고에 대한 SKY캐슬의 책임 소재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모방범죄’라며 제작진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반 환자가 그런 선택을 안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자’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많다.
SKY캐슬 시청자 게시판에도 300개 가량이 댓글이 붙어 팽팽하게 맞섰다. 제작진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은 ‘살해 위협을 희화화했다’ ‘SKY캐슬 선동이 사람을 죽였다’ ‘6화 재방송 중단하라.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 ‘제작진이 2차 가해자다’ ‘모방범죄 아니라는 증거 있느냐’ 등등을 적었다. 반면 ‘일반 시청자들은 바보도 아니고 조현병 환자도 아니다’ ‘왜 애꿎은 드라마 탓 하느냐’ ‘범죄나 조폭, 불륜 등을 다룬 콘텐츠들은 죄다 모방범죄의 원흉이냐’ 등등 제작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정선은 인턴기자 jse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