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이상과 현실의 교집합은 없는가

송영규 논설위원

최저임금 등 노동정책 둘러싸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진보·보수

‘백성을 잘살게 못하는 것도 죄다’

200년전 정약용 경구 새겨들어야

송영규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자기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남의 착한 행실을 보고 자신의 착한 점을 찾아내고 남의 악한 행실을 보고 자신의 악한 점을 찾아내라’.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제2장 ‘율기(律己)’와 제7장 ‘예전(禮典)’에서 수령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이렇게 적었다. 어디 이것이 수령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자기만의 잣대로 세상을 보려는 이들에 대한 경구로 봄이 마땅하다. 200년이 흘렀다. 우리는 과연 정약용의 충고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때의 조선보다 진일보한 인식을 가졌는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우리 사회는 둘로 쪼개졌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포함한 노동정책은 그 최전선이다. 한쪽에서는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적 포용국가로 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함께 잘살기 위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고도 한다. 다른 편에서는 노동정책 과속으로 우리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 재정주도 성장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타협점? 그런 것은 양쪽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볼 뿐이다. 현 노동정책 지지자들은 “지난해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림 없이 성장했다”고 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달성하고 수출도 사상 처음 6,000억달러를 돌파했다는 것이 근거다. 최저임금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아우성이고 일자리가 3분의1토막 난 현실, 한때 최대 지지층이었던 20대와 자영업자들이 왜 태도를 바꿨는지 진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목표가 좋으면 어떤 수단도 합리화되는 모양이다.


비판론자들은 신년 염원으로 ‘기업과 시장이 활기차게 돌아가고 좋은 일자리가 넘쳐나고 삶이 행복해지기’를 빌었다. 현 정부가 기업과 시장을 망치고 나쁜 일자리만 양산해 삶이 팍팍해졌다는 지적의 반어적 표현일 터다. 그동안 임시직과 일용직 같은 비정규직을 양산한 주역이 누구인지 소득 불균형 심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3%를 가져가는 비정상을 고칠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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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는 결국 충돌한다. 충돌의 피해는 고스란히 타고 있는 탑승객들의 몫이다. 보수와 진보도, 자본과 노동도 마찬가지다. 둘이 충돌할 때 국민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가 어려우면 사회는 혼란으로 치닫고 그 갈등 비용은 성장의 과실을 모두 삼키고도 남을 수 있다. 그때 가서 포용국가가 돼야 한다고, 기업이 중요하다고 백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각기 다른 이상과 현실은 서로 충돌하고 다투는 형식이 된다. 어떤 개혁의 실천이라도 당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공감 속에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상이 아무리 좋더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뜻일 터다. 진보 이론가가 진보 진영에 던지는 충고다.

경기 김포의 한 주물 업체에는 ‘직원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다. 이 글을 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회사 사장이다. 왜 이런 문구를 쓰게 됐는지 물어봤을 때 돌아온 말은 간단했다. “회사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경영을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휴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와 일을 해준 직원들 때문입니다.” 기업인이 노사 모두에 던지는 조언이다.

남이 존재하지 않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듯이 보수가 존재하지 않으면 진보도 가치를 잃는다. 노동 없는 자본, 자본 없는 노동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딱 한 달만이라도 청와대 참모가 기업경영을 맡아보고 야당이 복지정책을 맡아보라. 그러면 진보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 보수는 함께 잘사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지 않을까. ‘백성을 잘살게 해주지 못하는 것도 죄’라는 정약용의 지적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모두에게 적용된다./skong@sedaily.com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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