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올해 첫 베이비박스 아기 '나은이' 보육원 행…"출생신고 안돼"

친부모 대부분 출생신고 거부

입양길 막혀 작년 166명 보육원행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 시급




“태어나줘서 고맙고 엄마가 너무 미안해.”

지난 7일 오전10시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 이곳에는 태어난 지 열흘밖에 안 된 나은이(가명)가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보호자가 아기를 두고 가도록 만들어놓은 작은 철제 상자다. 오뚝한 콧날에 눈망울이 맑은 나은이는 3일 20대 미혼모로 알려진 보호자가 남긴 짧은 메모와 함께 이곳에 왔다. 올해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첫 아이다. 동시에 이른바 ‘시설(보육원)행’이 결정된 첫 아이다. 임선주 베이비박스 팀장은 “나은이는 보호자의 개인 사정으로 출생신고가 안 돼 8일 시설로 갈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 첫 베이비박스에 보호된 아이가 결국 보육원으로 가게 됐다. 전문가들은 현행 출생신고제의 허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밀출산제와 보편적 출산등록제 시행이 대안으로 꼽힌다.


베이비박스 측은 친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1순위로 둔다. 여의치 않을 경우 택하는 방안이 입양이다. 이를 위한 전제는 아이의 출생신고다. 현행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출생신고가 된 아이만 입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친부모는 출생신고를 한사코 거부한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교회 사무국장은 “2018년 기준으로 베이비박스에서 보호한 아이 227명 중 73%인 166명은 출생신고가 안 돼 보육원행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나은이 역시 이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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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곧장 보육원으로 향하는 것은 현행 출생신고제의 허점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는 부모가 신고를 해야 아이의 출생이 인정된다.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이 과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집계한 결과 베이비박스에 영유아를 맡기는 보호자의 59%는 미혼이며 기혼이어도 이혼소송 중이거나 외도인 보호자가 각 17.5%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출생기록이 남는 것을 꺼린다.

이 같은 현실을 보완하고자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2월 일명 ‘비밀출산제’ 법안을 발의했지만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비밀출산제는 임산부가 비밀출산 의사를 밝히면 담당 기관에서 신원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자녀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출산한 아이는 보호자 양육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최대한 지원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우선 시행한 후 비밀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아이가 태어난 사실만으로 출생을 인정하는 제도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부분 선진국은 아동의 출생을 부모의 신고가 아닌 출생 즉시 의료기관이 등록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나라 병원 분만율은 99%에 이르고 모든 의료기관에 국민건강보험의 전산 시스템이 갖춰져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위한 기반은 이미 마련돼 있다. 이 교수는 “출생신고제는 가정 분만율이 높던 시기에나 적합했던 제도인데 지금까지 유지하다 보니 아동 유기 등 각종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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