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글로벌Who]운영의 천재 팀 쿡 '애플의 발머'로 전락하나

현금 쌓아만 두던 잡스와는 달리

자사주 매입·주주배당에 쓰고

폭스콘 노동자 처우개선에도 앞장

화면 키운 아이폰으로 매출 끌어올려

혁신 부재 논란에도 굳건하던 쿡

글로벌 경기 둔화되면서 한계 봉착

월가 "혁신 없이 가격만 높인 탓"

빌게이츠 후임으로 성장기회 놓친

발머 前MS CEO전철 밟나 우려감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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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이 발머화(Ballmer-ization)하고 있는가.”

최근 애플이 실적전망을 15년 만에 최대폭으로 끌어내리며 ‘위기론’에 시달리자 시장에서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스티브 발머 전 마이크로소프트(MS) CEO에 빗대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머는 빌 게이츠 후임으로 14년간 MS를 이끌었지만 새 혁신전략을 세우지 못해 회사의 장기부진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시장에서는 최근의 애플 위기설과 함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사후 8년간 애플을 이끌어온 쿡 CEO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혁신 부재’ 논란이 다시 제기되면서 쿡 CEO가 발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고(故) 잡스가 신제품을 직접 발표하면서 혁신적 제품이나 기능을 설명하기에 앞서 언급했던 ‘한 가지 더(One more thing)’라는 말이 주던 기대감이 쿡 체제 이후 사라진 점이 애플 위기론의 진앙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잡스의 ‘혁신 유전자(DNA)’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쿡 CEO는 지난 8년 동안 ‘운영 DNA’를 바탕으로 애플을 빠른 속도로 키워왔다. 안정에 기반을 둔 운영능력은 잡스가 가지지 못한 그만의 강점이다. 잡스 역시 쿡 CEO의 이러한 안정적 운영능력을 깊이 신뢰하며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잡스가 췌장암 수술을 받았던 지난 2004년과 간 이식 때문에 6개월간 애플을 떠났던 2009년 당시 쿡은 잡스가 없는 애플을 무난하게 이끌며 잡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경험은 2011년 8월 잡스가 CEO에서 물러나면서 쿡을 차기 CEO로 강력히 추천하는 동기가 됐다.

그의 경력도 ‘창조’나 ‘혁신’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 196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소도시에서 태어난 쿡은 오번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듀크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이후 IBM에서 12년간 근무한 뒤 당시 세계적 PC 제조사인 컴팩 부사장직을 맡았다.


정보기술(IT) 대기업에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1998년 잡스를 만난 쿡 CEO는 5분 만에 ‘창조적 천재’ 잡스를 위해 일하기로 결정하고 애플에 합류했다. 이후 쿡은 애플의 핵심 공급업체를 100곳에서 24곳으로 줄이며 제조공정을 대폭 단축하고 창고의 절반 이상을 폐쇄해 재고물량을 70일치에서 1일치까지 줄이는 등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공급능력을 끌어올렸다.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한 일련의 행보로 그는 ‘운영의 천재’라는 평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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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4시 이전에 일과를 시작하는 일벌레로도 유명한 쿡 CEO는 잡스 사후 애플에 자기만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잡스 시절 쌓아만 두던 현금을 자사주 매입과 주주 배당에 쓰고 인수합병(M&A)에 무관심하던 잡스와 달리 30억달러를 들여 음향기기 업체인 ‘비츠일렉트로닉스’ 등을 인수했다. 잡스는 신경 쓰지 않던 폭스콘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도 나섰다. ‘스마트폰은 한 손 엄지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잡스의 철학은 4.7인치와 5.5인치로 화면을 키운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 출시로 뒤집혔으며 아이폰X 등 고급화를 통한 고가정책 실험은 아이폰 매출을 크게 끌어올리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서 운영의 달인 쿡의 매직은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특히 판매량 감소에도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게 한 아이폰 고가정책이 순항하던 애플의 발목을 잡았다. 루프벤처스의 애플 분석가인 진 먼스터는 “아이폰 평균 판매가격이 전년 비 23% 올라 잠재고객이 줄어들고 있다”며 “더는 가격 인상 기조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투자자문사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 애널리스트도 “소비자에게 비싼 돈을 내고 아이폰을 사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주지 못하는 점이 애플이 최근 직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혁신적 변화는 없이 가격만 높인 고급화 전략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없다는 설명이다.

쿡의 경영이 한계 조짐을 보이면서 다시금 그의 ‘닮은꼴’로 비교되는 인물이 발머 MS 전 CEO다. 빌 게이츠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14년간 MS를 이끈 발머는 쿡이 아이폰에 집중하는 것처럼 창업자의 유산인 ‘윈도’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지만 PC 판매 둔화로 매출은 물론 주가도 연일 추락했다. 앞서 경제매체 포브스는 쿡 CEO가 발머 전 CEO처럼 “기존 핵심제품의 가치와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면서 “오늘날의 애플은 쿡 CEO에 의해 아이폰을 만들고 파는 회사로 재탄생됐다. 이는 잡스가 세웠던 애플과는 완전히 다른 회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위기에 직면한 애플과 쿡 CEO가 MS의 지난 10년간 변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발머가 물러난 뒤 2014년 CEO 자리에 오른 사티아 나델라는 MS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회사의 존재 이유였던 윈도를 무료로 제공하고 회사의 역량을 클라우드 사업에 집중시키는 등 변신에 나선 것이다. 추락하던 MS는 새로운 회사로 거듭났고 나델라 CEO 부임 이후 회사가치는 3배 이상 커졌다.

마이클 케튼버그 전 애플 마케팅 담당 이사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있을 때 애플의 CEO가 되는 것은 쉽다”며 “이번 위기는 쿡이 CEO로서 테스트를 받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CNN은 “애플을 성장시킬 새로운 계획이 없다면 쿡의 연승 행진은 중단될 것”이라며 “‘IT 기업의 묘지’에는 야후·노키아·AOL 등 기술 혁신에 실패한 기업들의 묘비가 즐비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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