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규성 전 재경부장관, "경기하락기엔 고임금·증세 재고해야...이념 고집해선 안돼"

■니어재단 신년 경제세미나

소득주도 성장 등 유연성 필요

최저임금 영향받는 근로자 비중

올 36%로 올라 정부추정과 큰차

현실 직시하고 고칠 정책 고쳐야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로 불렸던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현 정부를 향해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위험관리에 임해야 한다”며 “경기 하강국면에서 지금과 같은 고임금 정책, 부동산 보유에 대한 증세정책 등이 옳은 선택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둔화의 그늘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생산성이 아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얽매이거나 소비 여력을 축소하는 증세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니어(NEAR)재단 주최 신년 경제 세미나에 강연자로 나서 “지금처럼 단기적으로 경기가 하락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술변혁이 일어나는 등 불확실성이 큰 세상에서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사로잡혀 이를 경직적으로 고집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견이 제일 많은” 정책으로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을 꼽았다.

이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 재무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가 8년 만에 김대중 정부의 경제수장으로 재등판한 인물이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다. 그해 1월 김 전 대통령은 취임도 전에 방송으로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 “우리 모두에게 무서운 시련기가 올 것”이라며 “저는 오랫동안 노동자를 위해왔지만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정리해고제 도입을 2년간 유예하겠다던 공약을 스스로 깬 것이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도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제 도입에 합의했고 정부는 대기업·금융·노동·공공 4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취임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일면식도 없지만 일을 잘한다고 해서 뽑았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공유경제, 국민연금 개편 등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 전 장관은 무엇보다 노동계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경제든 내부에 위험요인이 쌓여갈 때는 이익집단들이 욕구를 자제해야 한다”며 “특히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노동계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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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니어시사포럼 신년 경제세미나’에 채희율 경기대 교수(왼쪽부터),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15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니어시사포럼 신년 경제세미나’에 채희율 경기대 교수(왼쪽부터),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낙년 동국대 교수도 올해 3년차에 들어선 정부가 지난 정책들의 결과를 직시하고 고칠 부분은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2017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및 일용근로소득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소득 분포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고 “최저임금제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 비중에 대해 정부가 상당히 과소평가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소득이 최저임금에 미달해 최저임금제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의 비중은 전체의 29.9%에 달했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추정한 6.1%, 통계청이 추정한 13.3%보다 훨씬 큰 수치다. 최저임금 급등에 따라 2018~2019년에는 이 비중이 각각 34.7%, 36.7%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더욱이 소규모 사업체는 이미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급등의 타격까지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지난 1년 반 동안 정책이 이뤄졌고 이제는 결과를 환산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로부터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여력 확충이 절실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만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현재의 경기 하강이 일시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는 것인지 성장 여력이 없어지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며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재정확장 정책을 펴고 있는데 정말 지금이 대대적으로 (재정확장을) 할 때인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원인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 부양에 치중하면 구조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에는 대응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본격적인 경기 후퇴가 오기도 전부터 너무 대대적으로 확장정책을 펴면 정말 위험할 때는 재정여력을 쓸 수 없다”고도 경고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도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교정해나가는 구조개혁 노력이 지속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과 활력 저하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투자 위축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됐는데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의 위협’”이라며 “수출 의존적인 우리 경제의 대외경쟁력 유지를 장담하지 못하는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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