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 생각해봐 달라”(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영국 현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표결이 될 것으로 보이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 승인투표가 15일 오후 7시(한국시간 16일 오전 4시) 의회에서 진행된다. 메이 총리가 의회 긴급연설을 진행하며 찬성표를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현재로선 부결 가능성이 높아 영국 전체가 혼돈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메이 총리는 14일(현지시간) 하원 연설을 통해 “역사가 써질 때 국민들은 하원의 결정을 보고 여러 질문을 할 것”이라며 “EU를 떠나고자 하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이행했는지, 영국의 경제·안보와 연합들을 지켜냈는지, 국민들을 실망하게 했는지 말이다”라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이어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을 분열시킨다”며 “합의안은 완벽하지 않지만 부결되면국민들은 실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 총리는 합의안의 최대쟁점인 ‘안전장치’(백스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백스톱이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보더(국경통과 시 엄격한 통행 및 통관절차 적용)를 피하고자 향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남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는 “2020년 말까지 영국과 EU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절대적 확신이 있다”며 “이는 백스톱이 필요 없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영국 정치권에선 브렉시트 합의문 부결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하며 향후 시나리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 승인투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하원 의원 650명 중 표결권이 없는 의원을 제외한 639명의 과반인 320명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지만, 제1야당인 노동당,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물론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까지 합의안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 정부가 의정 사상 한 세기 만의 최대치인 150여 표차로 합의안 표결에서 실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메이 총리는 3개회일(sitting days) 이내에 ‘플랜 B’를 제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합의안 부결 후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시한을 연기하거나 2차 의회투표를 제시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날 가디언에 따르면 EU는 메이 영국 총리가 요청할 경우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브렉시트 발효 시한을 7월까지 연기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이 총리가 시간을 번 후 EU를 상대로 재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강경파들을 의식해 핵심쟁점인 ‘백스톱’ 재협상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제2국민투표안도 부상하고 있지만, 메이 총리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우리는 3월 29일 브렉시트를 시행한다. 그 시기를 늦추거나 제2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합의안 부결로 가장 위태로워지는 것은 메이 총리 자신이다. 텔레그래프는 이날 내각 소식통들을 인용해 메이 총리가 합의안 표결에서 ‘세 자리 숫자 이상’ 큰 표차로 패할 경우 조기 사임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합의안이 부결되는 즉시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해 16일 중 표결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며 조기총선 카드도 거론된다. 마지막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노딜 브렉시트’로, 이 경우 영국은 정치·경제 등 분야를 막론하고 격랑에 빠져들 것으로 전망된다. 베렌베르크 은행의 칼룸 피커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의회의 다양한 분파들이 브렉시트 과정을 통제하기 위해 다투면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불확실성의 최고 단계에 진입하기 직전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