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소득을 숨긴 채 기초생활보장급여 1,145만원을 부정 수급했다가 적발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지난해 9월 검찰 송치됐다. A씨는 함께 거주하는 B씨로부터 생활비 명목으로 총 1,700만원을 받았는데 이를 숨겼고 모친 명의로는 직장에서 급여도 받아왔다. 빈곤층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지출이 엉뚱하게 샌 대표적인 부정수급 사례다.
정부는 올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급여 수준도 늘리는 쪽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했다. 빈곤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수급자가 4만명가량 늘어나고 예산은 약 11조원이 투입되는 대표적인 저소득 대상 복지 지원사업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지원 예산은 오는 2022년 18조5,000억원까지 늘어난다. 그러나 이 같은 현금성 복지급여의 부정 수급으로 새는 돈도 적지 않다. 누수를 막을 만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복지 지출을 마구 늘리는 탓이다. 사회보장정보원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복지급여 부정수급이 적발돼 환수가 결정됐지만 거둬들이지 못한 미납액이 지난 2017년 83억8,800만원에서 2018년 8월 기준 106억원으로 늘었다. 이뿐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복지·보조금 부정신고센터에 따르면 월평균 70여건의 부정수급 신고가 들어온다. 신고를 바탕으로 부정수급을 적발해 환수를 확정한 금액만 696억원에 달한다.
줄줄 새는 복지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은 현 정부 들어 더 커지고 있다. 만 6세에서 7세 미만 모든 아동으로 대상이 확대된 아동수당, 2조6,000억원의 예산이 증액된 근로장려세제(EITC) 같은 현금 지급이 보편적 복지 형태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지출의 효율성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현금성 복지가 확대되는 것이다. 대상이 늘어나는 만큼 한정된 인원으로 수급 대상자를 엄선하는 작업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급격한 복지 확대와 이로 인해 줄줄 새는 세금은 고스란히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재정정책보고서에서 총수입 증가율이 2017~2021년 5.5%에서 2018~2022년 5.2%로 떨어지는 반면 총지출 증가율은 5.8%에서 7.3%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총지출 증가율과 경상성장률 간 격차도 2017~2021년 평균 1.0%포인트에서 2018~2022년 평균 2.8%포인트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복지정책의 밑천이 될 성장지표는 4.8%에서 4.5%로 내리막인 데 반해 지출 증가율은 5.8%에서 7.3%로 높아지는 탓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최근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가 올해 -1.9%에서 2030년 -2.9%로 악화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가 중기 목표로 잡고 있는 관리재정수지 한계점인 -3%에 근접하는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쓰인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건전성 지표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고 하지만 고령화로 복지 대상이 급증하는 것을 고려하면 지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한 번 늘린 복지 지출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속도 조절’을 강하게 주문하는 이유다. 예정처는 올해 106조8,000억원인 복지 의무지출 규모가 오는 2050년 347조7,000억원까지 3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무지출은 ‘경직성 예산’으로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 기초연금·아동수당에 들어가는 돈이 의무지출에 해당한다. 복지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3.9%로 총지출(2.5%)은 물론 전체 의무지출(3.1%) 증가율보다도 높다.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세입 기반 약화로 국채 발행이 늘면서 이자지출도 같은 기간 15조9,000억원에서 60조7,000억원까지 늘어난다.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고용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지출도 문재인 정부 들어 더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은 당장 지난해 적자로 돌아서 4년 전 예상보다 적자 발생이 4년 앞당겨졌다. 2017년 21조원에 달하던 누적 적립금도 2026~2027년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급여의 대부분을 급여화하고 선택진료를 폐지하는 등 건보 보장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의 영향이다. 정부는 올해 건보료를 8년 만에 최대 폭(3.49%)으로 올렸지만 적립금 소진 시점은 1년밖에 늦추지 못했다.
고령 인구 급증으로 예상되는 재정 악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증세와 보험료 인상이 병행돼야 하지만 국민 정서상 어려움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GDP 대비 각종 세금과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중을 의미하는 국민부담률이 우리나라는 26.9%(2017년)로 OECD 평균인 34.2%보다 7.3%포인트 낮다.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터키·아일랜드·칠레·멕시코 4개국뿐이다. 국민들이 선망하는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 선진국의 국민부담률은 45% 안팎으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복지에 있어 현실과 이상이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이다./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