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전6시 기상에 오후9시 취침 전까지 훈련 또 훈련이다. 그럼 일요일만이라도 뭔가 나이에 어울리는 취미를 즐기며 푹 쉬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오전에는 캐나다동포 선생님께 2시간 정도 영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혼자서 오프아이스(지상) 훈련을 해요.”
최근 훈련지인 캐나다 토론토로 돌아간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간판 차준환(18·휘문고)을 출국 전 만났다. 그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일상생활이 가장 다른 운동선수 중 한 명일 것이다. ‘초코파이’ 광고로 전파를 탔던 아역 모델 시절의 ‘꽃미모’를 그대로 지닌 차준환은 정말 피겨밖에 모른다. TV는 물론 휴대폰도 잘 보지 않아 아이돌 가수의 이름조차 거의 모른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화제가 됐다. 1년 열두 달 중 거의 9~10개월을 머무는 토론토에서도 집과 훈련장 말고는 따로 소개해줄 ‘잇 플레이스(뜨는 곳)’가 없단다. “훈련 스케줄을 따라가기도 벅차요. 쉴 때는 정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니까….” 그는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는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간다. 그는 “외국에서 엄마랑 단둘이 살다 보니 북적대고 활기 넘치는 학교생활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고 전했다.
차준환은 지난해 12월 초 한국 피겨의 새 역사를 썼다. ‘피겨퀸’ 김연아 이후 한국인으로 9년 만에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 무대를 밟은 것. 그랑프리 파이널은 시즌 성적 상위 6명만 초대받는 ‘왕중왕전’이다. 참가만으로도 놀라운 기록인데 차준환은 월드스타 네이선 첸(미국), 우노 쇼마(일본)에 이어 동메달까지 따냈다. 그랑프리 파이널 메달 획득 역시 김연아 이후 처음이자 한국 남자 선수로는 사상 첫 쾌거였다. 아직 이르지만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가올 올림픽에 대해 묻자 차준환은 “두 번째 올림픽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15위)은 사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준비했어요. 그런데 마치고 나니 과정의 중요성이 와 닿더라고요. 정말 노력해 준비했다면 경기 결과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는 거니까 스스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모든 대회를 그런 마음가짐으로 치를 겁니다.”
언뜻 가벼운 깨달음 같지만 지독한 부상을 견뎌내며 피와 땀으로 체득한 진리다. 차준환은 올림픽 시즌인 2017-2018시즌에만 부츠를 열세 번이나 교체했다. 아무리 바꿔봐도 딱 맞는 부츠가 없어 발목이 성할 날이 없었고 그 상태로 점프 연습을 강행하다 보니 계속 빙판에 넘어졌다. 결국 고관절에 심각한 염증이 생겼다. “올림픽 1차 선발전 사흘 전이었어요. 밤에 자다가 느낌이 이상해 엉덩이를 만졌는데 기분 나쁘게 말캉거리더라고요. 알고 보니 세포가 죽어서 물이 찬 거였어요. 다음날 병원 가서 주사기로 물을 뺐는데 염증이 워낙 심해 피도 같이 나오고….” 차준환은 “발목이 너무 아파서 계속 넘어지고 그러다 보니 고관절에 물이 차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경기력이 최악이었다. 제 인생에서 그렇게 ‘망한’ 적은 처음이었다”고 돌아봤다. 설상가상 캐나다로 돌아가 2차 선발전을 준비하던 중에는 손목 골절까지 당했다. 차준환은 부츠 끈을 손 대신 이로 묶고 훈련에 나섰다. 2차 선발전까지 1위와 30점 차 가까이 벌어져 올림픽 티켓은 이미 멀어졌다는 전망이 많았다. 차준환은 “최종 3차를 앞두고 꿈을 꿨는데 제 차례가 됐는데도 경기를 못 뛰고 밖에서 마냥 대기만 하는 끔찍한 꿈이었다”며 아주 옛일인 것처럼 빙긋이 웃었다. 딱 1년 전이었다. 3차 선발전에서 차준환은 기적처럼 30점 차를 뒤집었다. 그렇게 거머쥔 올림픽 티켓이었다.
차준환은 최근 국내에서 치른 회장배 랭킹 대회와 코리아 챔피언십까지 가볍게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 머무는 동안만도 부츠를 다섯 번이나 교체해야 했다. 발목은 “부츠에 닿을 때마다 너무 아파 링크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여전히 상처투성이이고 고관절은 살짝 튀어나와 있다.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4대륙 선수권과 오는 3월 일본 세계선수권까지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차준환은 “관리를 잘하면서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며 또 웃어넘겼다.
올림픽 이후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대회 상금이 금전적으로 큰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해외 체재비에 코치비 등 워낙 지출이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 그럼에도 자신이 택한 길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피겨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의 느낌이 좋아서” 피겨를 시작한 차준환은 “돌아보니 벌써 10년을 탔는데 10년 전보다 피겨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올림픽을 계기로 전에 없던 확실한 목표와 방향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 중 답변을 듣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질문은 ‘피겨를 안 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였다. 정말 생각조차 안 해봤는지 답을 찾지 못하던 차준환은 “아역 배우였기 때문에 그쪽에 매진하면서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먼 얘기지만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는 “그때쯤 되면 피겨 말고 하고 싶은 게 생길 거라고 본다. 사실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있기는 있다”고 말했다.
피겨는 점프가 다는 아니지만 일반 스포츠팬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역시 점프다. 차준환은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총 세 번 뛴다. 쇼트프로그램 때 한 번, 프리스케이팅 때 두 번이다. ‘점프머신’으로 불리는 중국계 미국인 첸은 평창올림픽 때 프리스케이팅에서만 4회전 점프를 여섯 번이나 뛰기도 했다. 이 때문에 더 높은 곳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4회전 점프 과제를 늘려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차준환은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점프에 더 익숙해지고 난 뒤에 늘려나가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배워가는 게 많고 발전 중인 선수니까 발전의 여지를 점프 과제에 한정 짓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시상식에서 등 뒤로 태극기를 펼쳐 들었던 이 소년은 당시 나이가 불과 만 17세48일이었다. 그는 “비시즌에는 원래 뛰는 점프 외에 쿼드러플 플립 점프를 집중적으로 연습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는 말로 살짝 기대를 안기기도 했다.
2018년의 자신에게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차준환은 2019년을 마감하면서도 똑같이 ‘정말로 수고 많았다’는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항상 완벽에 가까운 컨디션으로 뛸 수는 없잖아요. 어쩌면 ‘폭망’할 수도 있던 상황에서 여기까지 제법 잘 이끌어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차준환에게 지난 한 해의 키워드는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올 한 해 스스로 꼽은 키워드는 ‘열정’이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도 열정적이고 건강한 한 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제 경기도 열심히 응원하러 다니실 수 있을 테니까요.”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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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서울 △휘문중-휘문고 재학 중 △2012·2013년 전국남녀 종합선수권 주니어 우승 △2015년 캐나다 오텀 클래식 주니어 우승, 회장배 랭킹 대회 우승 △2016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3차·7차 우승 △2016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 △2017년 종합선수권 우승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15위 △2018년 ISU 시니어 그랑프리 2차·3차 동메달 △2018년 ISU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 △2019년 종합선수권 3연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