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뒤덮었다. 1년 전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각국 정·재계 주요 인사들은 중국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세계 경제가 직면한 리스크와 경기 둔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며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주목해야 할 논의 중 하나로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를 꼽았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유럽 및 아시아의 경제 성장세에 힘입어 낙관론이 최고조를 찍었다. 그러나 올해는 미중 무역전쟁 확대와 브렉시트 불확실성,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등으로 비관론이 증가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과 세계 경제 성장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둔화는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 성장을 짓누르는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통상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엔도 이날 연례 세계 경제 상황·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와 내년도 글로벌 성장률을 각각 3%로 제시하면서 “무역갈등과 부채 증가 등이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중국이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8년 만에 가장 낮은 6.6%에 그쳤다고 발표한 가운데 시 주석도 직접 중국 경제 둔화에 대해 “중대 위험”이라고 경고하며 심각성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 주석은 현재 세계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불안과 위험 요소가 많다면서 중국의 외부환경이 복잡하고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미 대통령에 맞서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황 등을 염두에 둔 말로 풀이된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의 타격이 점점 현실화되면서 산업 일선에 있는 기업인들은 경제 성장 둔화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PwC가 다보스포럼 개막을 하루 앞두고 지난 21일 발표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0%가 12개월 내로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1년 전보다 비관적 전망이 6배로 늘어난 수준이다. CEO들이 꼽은 경제 위협 요소 가운데 무역전쟁은 대부분 상위 순위를 차지했다. 무역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의 CEO는 각각 98%, 90%가 미중 무역전쟁 이슈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다.
밥 모리츠 PwC 회장은 “지난해와 정반대로 세계 곳곳에서 우울한 분위기가 만연하다”며 “무역긴장과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면서 기업들의 자신감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은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머니마켓펀드(MMF) 자산은 지난해 4·4분기 1,906억달러로 금융위기인 2008년 4월 이후 최대 순유입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17일까지 20억달러 넘는 자금이 MMF에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MMF는 초단기 금융상품으로 간편하고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어 통상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몰린다. 대형 은행인 골드만삭스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현금 비중이 13%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주식보다 높아진 상태다.
한편 올해로 49회째를 맞은 포럼에는 ‘지구화 4.0: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아키텍처 형성’이라는 주제 아래 65개국 정상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40여개 국제기구 수장을 비롯해 3,000여명의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미국·중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 정상들이 대거 불참하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지만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며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