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회견에서 경제 부문과 관련해 가장 많이 나온 단어의 순서는 ‘성장, 정부, 혁신, 고용, 기업, 투자’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달성하기 위해 위의 주요 단어를 조합해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를 한 문장으로 만들어 보면 ‘기업이 혁신을 통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성장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 중에 ‘정부’라는 말은 문장에서 뺐다. 경제학자의 상식으로 보건대 정부는 투자와 고용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 투자나 고용을 하려면 자기가 번 돈으로 하는 게 아니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가계나 기업이 세금을 안 냈으면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던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저조한 경제실적에 마음이 급해진 대통령과 장관들이 기업인을 만나 투자와 고용증대를 부탁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현 정부의 정책입안자들도 기업이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점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증대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가능은 한 것일까. 요즘 유행하는 수소경제나 규제 샌드박스 같이 체감하기 어려운 정부의 정책구호들 대신 필자가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생각해봤다.
통신전자부품을 만들고 있는 내로라하는 중견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몇 년간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작업공정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해 이제 실제공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인력을 줄이고도 같은 양의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생산단가를 20% 정도 낮출 수 있게 돼 큰 수출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의 사장인 B씨는 앞으로 몇 년간 계속해서 이익이 쌓이게 되면 현재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아들과 함께 새로운 공장의 증설과 신제품 개발도 시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신규채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혁신을 통한 투자와 고용의 증대라는 정책목표에 걸맞은 멋진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첫째, 노조의 반발로 고용을 줄이는 혁신은 일어날 수 없다.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게 불가능하다. 작업공정은 줄였지만 같은 숫자의 인력을 유지해야 하니 생산단가를 떨어뜨리기 어렵다. 계속해서 오른 최저임금도 부담이 된다. 물론 몇 년 뒤 새로 신규채용을 할 계획이지만 지금의 노조는 자신의 밥그릇을 젊은 청년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이해해줄 리 없다. 둘째, 늘어난 이익을 장래의 투자를 위해 쌓아두기 어렵다. 대부분의 경쟁 국가들이 내리는 법인세를 올려버린 이 정부하에서 높은 법인세를 내야 하고 사내유보금에 대해 미환류소득세를 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늘그막에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키울 인센티브가 없다. 최고 세율 65%에 달하는 상속세로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를 물려줘 봤자 자식들은 세금을 내기 위한 빚으로 허덕이거나 회사를 매각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약간은 과장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하는 분 입장에서는 과장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해외에서 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베트남 직접투자 1위 국가에 올랐다. 해외직접투자액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미 임금경쟁력을 상실한 국내에 공장을 짓는 일은 망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 전 방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친노조·반기업 정책들을 보면 ‘기업이 혁신을 통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성장하는 국가’라는 목표를 과연 이번 정부는 달성하고 싶은 것인지 달성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경제는 명령한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경제학자·정책입안자들이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을 만든다 해도 뜻대로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경제다. 안 그렇다면 경제위기가 왜 오겠는가. 어떠한 경제정책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정책을 수정하든지 목표를 수정하든지 해야 한다. 더욱이 경제는 ‘내가 옳으니 나를 믿고 따르라’라는 믿음과 신념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경제는 종교가 아니고 기업은 신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 기명칼럼진에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대 교수가 추가됩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석사를 거쳐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브랜다이스대, 터프츠대에서 강의하다 성균관대로 옮겼으며 거시금융·국제거시경제 분야를 전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