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남미 화약고’ 베네수엘라 정국 대혼돈…대규모 퇴진 시위에 마두로 벼랑 끝으로 몰려

마두로 재임 13일 만인 23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 벌어져

美 등 국제사회 “과이도 국회의장을 합법 대통령으로 인정”

다만 정권기반인 군부의 동참 없이는 축출 가능성 낮아

美 추가 제재에 여야 대립 지속시 경제 파탄 가속화 우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2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 지지자들이 거리를 꽉 메운 채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라카스=로이터연합뉴스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2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 지지자들이 거리를 꽉 메운 채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라카스=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오늘 거리에서 다시 태어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할 것입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 미국을 위시한 우파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린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국제사회가 마두로가 아닌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히면서 베네수엘라 정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과 정정 불안으로 촉발된 이번 시위가 정권 교체의 기폭제가 될 지 주목되는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의 정권 기반인 군부의 퇴진 동참이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우파 야권과 지지자 수만명이 모여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1958년 베네수엘라에서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정권이 대중봉기로 무너진 날이자 마두로 대통령이 재취임한 지 겨우 13일이 되는 날이었다.


정권 퇴진운동의 선봉에 선 과이도 의장은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작년 5월 대선에서 6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유력 후보들이 가택연금과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부정선거라며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미주 13개국도 마두로를 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주 우파국가들은 이날 야권의 정권퇴진 운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밝혔다. EU도 “베네수엘라 국민의 목소리가 무시될 수 없다”면서 재선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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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배경에는 손 쓰기 어려운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에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량 보유국인 베네수엘라는 2015년 국제유가 급락을 기점으로 경제에 직격탄을 맞았다. 마두로 이전 정권인 우고 차베스 정권부터 시작된 좌파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은 경제를 더욱 고립시켰으며, 미국 등이 마두로 정권의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급격하게 고꾸라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으며, 경제난을 피해 이웃 국가로 탈출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이미 300만명을 넘어섰다.

후안 과이도(35)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2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집회에서 헌법전을 손에 들고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있다. /카라카스=AFP연합뉴스후안 과이도(35)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2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집회에서 헌법전을 손에 들고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있다. /카라카스=AFP연합뉴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오히려 석유 이권을 노린 미국이 중남미 우파 정권과 함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비난하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야당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날도 마두로 대통령은 수천 명의 지지를 상대로 한 연설에서 “헌법에 따른 대통령으로서 제국주의 미 정부와 정치·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며 미 외교관들을 향해 72시간 내에 출국할 것으로 명령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데는 정권 기반인 군부의 지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날 군은 과이도 의장의 임시 대통령 선언을 거부하며 반정부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앞서 지난해에도 수차례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지만 군의 강력한 진압에 흐지부지 된 바 있다. 러스 댈런 카라카스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민주적인 도구로는 정부의 억압이 심한 베네수엘라에서 그다지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며 “시위로 마두로를 퇴진시킬 수 있었다면 이미 여러 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번 야권의 정권 퇴진운동의 성공 여부는 결국 군의 움직임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군 수뇌부는 여전히 마두로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지만 이미 일부 반발의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수도방위군 소속 군인 27명은 군 초소에서 총기를 탈취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게다가 미 정부가 공개적으로 베네수엘라에 개입을 선언하면 군의 결속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 군 간부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쿠데타 계획을 논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금주 중 석유 등 에너지 부문에 추가 제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만큼 미국이 주 수입원인 석유 수출에 제재를 가할 경우 마두로 정권의 퇴진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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