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몽유병자들] '인류 최악의 비극' 반복하지 않으려면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책과함께 펴냄




북핵 위기가 전 세계를 얼어붙게 했던 2017년 12월 북한에서 리용호 외무상과 마주 앉은 제프리 펠트먼 당시 유엔 사무차장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친서와 함께 책 한 권을 건넸다. 책의 제목은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 부제는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렀는가(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였다. 100여 년 전 유럽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던 1차 세계대전 발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 이 책을 건넨 것에 어떤 외교적 메시지가 담겼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 가운데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외부 기고 칼럼을 통해 ‘펠트먼이 의도치 않은 충돌의 위험을 지적하는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을 건넸다’고 분석했다.


책의 내용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몽유병자들은 이성도 감성도 마비된 채 어떤 의지도 의도도 없이 움직일 뿐이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분석한 당시 유럽의 위기는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국가의 귀책이 아니며 바닥으로 떨어진 상호 신뢰와 피해망상에 빠진 각국 지도부, 숱한 오판이 빚어낸 인류 최악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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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베르사유 조약과 피셔테제 등의 전통을 잇는, ‘누구 때문이냐’고 묻는 기존의 책임론에선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전쟁의 주범으로 꼽혔다. 그러나 ‘어떻게 일어났느냐’의 관점으로 질문을 살짝 비틀면 프랑스와 러시아 역시 만만치 않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공동책임론’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전쟁 발발 직전의 ‘7월 위기’로 시계를 돌린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군사적 위협의 균형이 얼마만큼 독일에 불리하게 기울었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이 불균형이 독일을 궁지로 몰아 최악의 사태를 빚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 또 독일은 당시 발칸에서 통제력을 잃으며 혼란을 겪던 러시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을 계산하지 못했다.

한반도의 위기는 상당 부분 완화된 듯하지만 여전히 안개 속이다. 누구도 전쟁과 대립을 의도하지 않지만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면 비극의 역사는 반복될 공산이 크다. 4만8,000원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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