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토요워치]영유캐슬, 영혼캔슬…"전적으로 재력·교육열을 믿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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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 어떻게" 에세이 요구에 부모 면접까지…험난한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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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영어유치원의 인기와 이에 따른 학부모들의 사교육 열기는 대입 문제를 다룬 인기 드라마 ‘SKY캐슬’의 유아판이라 할 만하다. 명문대 입시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강남의 일부 영어유치원은 학부모들의 재력·교육열 등을 따져가며 ‘골라 받기’ 할 정도로 콧대가 높다.

인기 있는 영어유치원은 ‘슈퍼 엘리트’로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영재급 아이만 선별해 받는다. 아이의 재능과 열의만 있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재력과 지속적인 교육열은 기본 요소다. 드라마 SKY캐슬에서 유명 입시 코디네이터로 등장하는 ‘김주영 선생님(김서형 역)’은 재력가 부모들을 상대로 아이에 대한 교육계획, 아이의 학업성취 수준 등을 까다롭게 심사한 뒤 맡을 학생을 선택한다. 드라마 속 스토리가 영어유치원 단계에서는 이미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재력과 교육열, 둘 중 하나만 부족해도 ‘유아판 입시전쟁’에서 낙오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온다.


영재수준 테스트도 통과해야 문턱 허용

입학땐 과도한 과제…보충 과외는 필수

수백만원 입학금·교재비 뒷받침은 기본



명문대 뺨치는 명문 영어유치원들의 콧대는 시쳇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만 영어유치원 90여개가 성업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 달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교습비를 받고 있다. 월 200만원 이상인 곳도 심심찮게 보인다. 여기에 매달 별도로 나가는 교재비와 활동비가 더 붙는다.

서울 서초구의 A영어유치원은 입학을 희망하는 학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교육계획을 설명하라’며 이를 담은 에세이까지 써오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아이를 이 영어유치원에 보내려다 결국 포기한 한 학부모는 “교육도 좋지만 소비자와 판매자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어서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영어유치원의 한 달 교습비는 170만원 정도다. 여기에 입학비·교재비 명목으로 수십만원이 더 들어간다.


같은 지역의 또 다른 ‘명문’ 영어유치원의 경우 입학하기 위해 학부모들은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놀이식 영어교육’을 표방한다는 이곳은 아이를 보기도 전에 학부모와의 ‘면접평가’를 진행하고 여기서 탈락한 학부모의 자녀는 아예 입학 후보에도 올리지 않는다. 학부모 면담을 무사히 마치더라도 아이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 영어유치원의 ‘레벨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입학을 가까스로 허락받을 수 있다. 합격하려면 같은 연령대의 상위 5%에 해당하는 ‘영재’ 수준의 성적을 받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상위 레벨은 못해도 일반 중학교 상위권 학생이 풀 수 있을 만한 문제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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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의 한 영어유치원은 입학 상담 때 학부모에게 ‘명문대 입시 플랜’을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년 3월 이곳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한 학부모는 “대입 수능영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완성 단계에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한글은 네 살까지 깨우치고 영어는 다섯 살부터 원어민 수준으로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며 “학생부종합전형을 노리려면 공부 말고도 준비할 게 많은데 영어 정도는 빠르게 마스터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영어유치원 입학 연령을 4세까지 낮추는 곳도 있다.

명문 영어유치원에 입학했다고 끝이 아니다. 원아들을 수준별로 분류하고 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레벨업’을 위해 별도의 공부를 계속 해야 한다. 과도한 학습량을 아이들이 다 따라가기 버겁다 보니 일부 학부모들은 영어학원 진도를 맞추기 위한 별도의 영어 과외까지 받는 형편이다. 대입에서 흔한 일이 된 ‘사교육을 위한 사교육’이 유치원 단계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 같은 ‘영어유치원 전용 과외선생님’은 시간당 7만~8만원의 고액 과외비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영어유치원 교사 출신이거나 명문대 영어교육학과, 영미권 유명 대학 출신의 강사들이 많다. 특히 영어유치원 입학 시즌이 되면 레벨테스트 통과를 위한 상담 문의가 쏟아진다. 한 학부모는 “영어유치원 과제가 워낙 많아 엄마들이 직접 챙겨주기에 버겁다”며 “과제를 도와주는 일을 과외선생님에게 맡기는 것을 ‘외주를 준다’고 하는데 외주를 주는 엄마들도 꽤 많다”고 털어놓았다.

‘사교육 1번지’ 강남에서 입지를 다진 영어유치원들은 서울 송파·목동, 경기 분당, 세종시 등 입시 열기가 뜨거운 다른 지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경미 의원이 공개한 지역별 최대 교습비를 보면 경기 분당의 한 영어유치원은 월 교습비가 무려 198만원에 달했다. 전국 최고인 서울 서초구의 영어유치원이 월 204만원을 기록한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경남 거제시에 문을 연 강남 영어유치원 분점은 매달 165만원의 교습비를 받는다. 하지만 이곳을 다니는 학부모들은 “강남 아이들과 격차가 벌어질까 걱정했는데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오히려 반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중-외고-명문대’ 엘리트코스 형성

유치원내 ‘입시 카르텔’에 부모들 목매



따라가기도 버거운 수준의 영어유치원을 이렇게까지 해서 보내야 하는 이유는 뭘까. 한 사교육 시장 관계자는 “코어(core) 입시정보를 갖춘 학부모들의 카르텔은 유치원 그룹에서 이미 형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력에 행동력까지 갖춘 학부모들이 모임을 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그룹화돼 사립초-국제중-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 등 이른바 ‘엘리트 교육’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초창기 영어유치원 졸업생 그룹은 이미 명문대 입학을 이룬 상태”라며 “유아 단계부터 형성된 이런 ‘엘리트 그룹’이 암암리에 여럿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진동영·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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