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베네수엘라 혼란, 미러 대리전으로 탈바꿈 하나

베네수엘라의 타치라에서 23일(현지시간) 경찰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반대하며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이번 시위로 현재까지 26명이 사망했다./타치라=로이터연합뉴스베네수엘라의 타치라에서 23일(현지시간) 경찰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반대하며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이번 시위로 현재까지 26명이 사망했다./타치라=로이터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국제사회의 힘겨루기 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반(反) 마두로’ 진영의 핵심인 미국이 뜻을 같이하는 주변 국들과 함께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 등 ‘친(親) 마두로’ 진영 역시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압박하는 서방을 향해 ‘내정 간섭’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맞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세력과 권좌를 지키려는 마두로 대통령의 대립으로 두 쪽이 난 베네수엘라가 미국과 러시아 간 ‘신냉전’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회의에 참석해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베네수엘라에 2,0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날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언급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계획은 전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힌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AFP통신은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마두로 대신 과이도 국회의장으로 지지 의사를 옮기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우리의 원조 발표는 임시대통령이 이끄는 국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며 베네수엘라 여론에 영향을 끼치려는 미국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소집을 요구하는 등 주변국들과 접촉을 확대 하며 마두로 정권 퇴진을 위한 국제적인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캐나다, 영국, 브라질, 콜롬비아 등 13개국이 미국과 뜻을 함께 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우파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러시아와 중국 등 반대 진영은 즉각 ‘내정 간섭’이라며 서방측 행동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날 크렘린궁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날 마두로 대통령과 통화를 통해 외부로부터 야기된 극심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합법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파괴적인 외국의 간섭은 국제법의 기본을 짓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크렘린궁은 덧붙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자임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인정한 것은 워싱턴이 베네수엘라 위기에 직접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는 내정 간섭이며 마두로를 권력에서 몰아내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중국 역시 “외부 세력이 베네수엘라 내정을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서방측 행동에 경계감을 나타냈다. 현재 쿠바와 볼리비아, 멕시코 등의 국가들이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며 러시아·중국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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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반 마두로 진영에 대해 직접적인 경고를 하고 나선 이유는 정권이 바뀔 경우 러시아와 중국이 진행해 왔던 베네수엘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베네수엘라를 경제적·군사적으로 미국에 맞서는 남미의 거점 국가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는 베네수엘라를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수년 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왔지만, 최근 베네수엘라 혼란으로 투자가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WP도 “러시아의 분노 뒤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러시아가 영향력을 구축하기 위해 투자한 수십억 달러의 돈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마두로 정권 출범 이후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 시설 등 총 41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중국 역시 550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 기업들이 활동을 확대하고 있고 통상·경제 및 투자 협력도 진행되고 있다”면서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베네수엘라 군부가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며 위기에 몰린 마두로 대통령에 힘을 보탰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장성들을 대동한 채 연 기자회견에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민주주의와 헌법, 마두로 대통령을 거스르는 쿠데타를 시도했다”면서 “마두로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마두로 대통령이 군 주요 장성들을 국영 석유회사의 요직에 앉히는 등 군을 우군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반정부 시위가 확대되면서 일부 군인들이 시위대에 합류하는 모습도 나오고 있어 군부의 최종 방향은 지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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