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진화의 배신] 禍를 피해온 진화, 禍를 부르다

■리 골드먼 지음, 부키 펴냄

두려움·과식본능·탈수방지 등

인류 생존 이어온 4개 유전형질

현대사회 변화속도 못 따라잡아

자살·우울증·비만·고혈압 등

오늘날 '현대병 원흉'으로 돌변

유전자 변화 치료법 등 대안제시




미 육군 82공수사단의 일원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후 전역한 제이슨 팸버턴 하사는 지난 2012년 본인의 아파트에서 1년여 전 결혼한 아내를 총으로 쏴 살해한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최전방 정찰병 임무를 맡았고 필요할 때는 저격수 역할까지 해내며 세 차례나 훈장을 받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자살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사건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미국 성인 10명 중 1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매년 4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 수는 살해당하거나 전투 중 사망하는 수의 두 배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심장병 전문의로 현재 컬럼비아대학교 의학건강과학대학원 학장, 컬럼비아대학병원 원장 겸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리 골드먼은 그 이유가 수십만 년간 인류를 존속하고 번성하게 해준 ‘유전자’ 속에 있다고 말한다. 비명횡사 당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며 두려워하고 순종하며 슬퍼하는 전략이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자살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지난 1만 세대 동안 인류는 살해되지 않으려면 살해해야 했으며, 싸울 힘이 없을 때는 도망을 치거나 순종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다. 살인자가 희생자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었다. 세상은 점점 안전해지고 폭력 사태도 줄어들었으나 폭력과 그 두려움에 대한 본능은 속 깊이 남아 있다. 지나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성향이 불안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 심지어 자살까지 초래하게 됐다.


그뿐 아니라 굶주림과 아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던 과식 본능은 이제 비만과 당뇨병의 원흉이 됐으며, 치명적인 탈수를 예방해주던 물과 소금 보존 본능은 고혈압을 가져온다. 출혈로 인한 사망을 방지하는 신속한 혈액 응고 장치는 혈전을 형성해 혈관을 막거나 터뜨려 뇌졸중과 심장 질환을 부른다.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인간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목숨을 도리어 빼앗아 가는 주요 현대병의 원흉으로 돌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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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유전자가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생긴 현상들이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유전 형질들이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몸을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 조상들은 하루에 0.7그램의 나트륨만 섭취하고도 잘 살았지만 현대 미국 성인은 하루 평균 3.6그램, 세계적으로는 평균 5그램을 섭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몸의 탈수 방지를 위한 과잉보호 조절 장치가 작동하면서 나트륨 보존 호르몬이 과다 분비돼 ‘본태성 고혈압’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고혈압의 95퍼센트를 차지한다.

리 골드먼 박사는 의지력에서부터 최첨단 기술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해법을 살피며 대안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의지력으로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이어트, 운동, 소금 섭취 줄이기, 심리 치료, 공공 프로그램 등에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고 때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또 다른 선택지는 현대 과학과 의학, 즉 약과 수술이다. 비만 치료제와 당뇨병 치료제 등이나 자연 선택보다 더 빨리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유전자 치료법 등이 있다. 저자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인류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야 한다. 20만 년에 걸쳐 살아남은 인류가 성공적으로 헤쳐온 모든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2만2,0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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