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의 고위급 무역담판을 불과 이틀 앞두고 중국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와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을 전격 기소하면서 난항을 겪어온 미중 무역협상 타결이 최대 암초를 만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화웨이 기소에 대해 “무역협상과 전혀 관계없다”고 애써 선을 긋고 있지만 이번 조치가 미중관계를 한층 경색시킬 요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측 협상단 대표로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도착한 시진핑 주석의 경제책사 류허 부총리와 30~31일 협상기간에 면담할 예정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미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이날 금융사기와 기술절취 등 13개 혐의로 화웨이와 미국 내 자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 부회장 등을 기소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뉴욕 동부지검은 화웨이 및 2개 관계사, 멍 부회장을 상대로 대(對)이란 제재를 위반해 통신장비 등을 수출하면서 은행에 거짓말을 한 점 등 13개 범죄혐의를 적용했다. 멍 부회장 기소는 캐나다에 억류 중인 그를 미국으로 인도받기 위한 절차로 풀이된다. 아울러 워싱턴주 대배심은 미 통신업체 T모바일의 기밀절취와 사법방해 등 10개 혐의로 화웨이를 기소했다. 화웨이 기술자들이 T모바일의 로봇 기술을 훔쳤다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블룸버그는 화웨이가 경쟁사의 기술절취에 성공한 직원에게 다양한 보상을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매슈 휘터커 법무장관 대행은 “중국은 자국 기업의 범죄행위를 우려하며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이번 사건은 자유롭고 공정한 글로벌 시장을 위협하려는 화웨이의 뻔뻔하고 지속적인 행태를 드러낸 것”이라고 화웨이의 스파이 혐의를 강하게 제기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번 기소가 “미중 간 무역협상과는 전적으로 별개”라며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하지만 로이터 등 외신은 트럼프 정부의 화웨이 기소를 무역협상에서 중국을 압박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카드로 보고 있다. 중국이 미국 측에서 중시하는 구조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미국산 제품 수입을 늘리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첨단기술 탈취 정황이 드러난 화웨이 기소를 중국 측의 결단을 촉구하는 압박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중국 정부도 29일 미국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압박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하게 맞섰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익을 결연히 지킬 것”이라면서 멍 부회장에 대해서도 “미국은 체포령을 철회하고 인도요청을 하지 말기 바란다”고 거듭 촉구했다.
화웨이의 ‘기술 도둑질’에 대한 미국의 무더기 기소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30일부터 이틀간 열릴 미중 무역담판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장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과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특검 수사 확대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성과를 올리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 점이 협상 결과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기간 중 류 부총리를 직접 만나기로 한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번 협상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류 부총리가 결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류 부총리를 필두로 이강 인민은행장, 랴오민 재정부 부부장,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 등이 포함된 중국 대표단은 이날 워싱턴DC에 도착했으며 30~31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비롯해 므누신 재무장관, 로스 상무장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 미 측 대표단과 백악관 옆 아이젠하워빌딩에서 고위급 담판을 벌일 예정이다. /뉴욕=손철특파원 베이징=최수문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