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500억 한도 공제액 확대...'피상속인 10년 경영' 조건도 풀어

■'가업상속세 완화' 본격 시동

"경영환경 빠르게 변하는데

한 업종만 고집은 망하는 길"

中企 상속요건 개선 목소리

야당까지 관련 법안 잇달아

여와 공감대 높아 통과 유력

인천 소재 양변기 제조업체를 40년 넘게 이끌어온 송시영(가명) 대표는 최근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던 계획을 접었다.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맞추자니 회사가 망할 것 같고, 그렇다고 폭탄에 가까운 증여세를 다 물기가 너무 아까워서다. 그는 특히 ‘10년간 업종전환 금지’를 내건 가업상속공제 요건에 혀를 내둘렀다. 송 대표는 “양변기(일반도자기제조) 만들던 회사가 연관상품인 비데(기타금속가공제품 제조)로 사업을 돌리면 업종이 바뀌었다며 상속공제를 받을 수 없다”며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데 한가지 업종만 10년간 잡고 있으라는 건, 앉아서 망하라는 얘기”라며 하소연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여당)이 8일 중견·중소기업의 가업상속 과세 규정 완화에 나선 이유는 현재 제도가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애초 특정 요건에 맞는 중견·중소기업에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탄생할 때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 건실하게 운영한 강소기업들이 지속 성장하고 안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라는 뜻이었다. 제조업의 근간이 될 뿌리 기업들이 명맥을 잇지 못하며 부품 강국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현실도 반영됐다. 그러나 공제제도 면면을 들여다보면 세금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여기기에는 지나친 조항들이 대거 담겼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상속 대신 매각을 택하면서 지속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가치마저 위협받는다는 얘기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업력 10년 이상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응답기업의 69.8%가 가업승계 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상속세 등 조세부담을 들었다. 이와 관련 가업상속공제 요건 중 완화가 시급한 부분으로는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계속 경영(46.4%), 사후요건 완화 사항으로는 가업용자산 80% 이상 유지(39%), 사후의무 이행요건 기간 10년(36.4%) 등이 꼽혔다.







특히 기업승계 이후 10년간 업종과 정규직 근로자의 80% 이상, 상속지분 100%를 유지해야 하는 가업상속공제 조건은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사업재편이나 신사업 진출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가업 승계 시점이 기업 재도약의 모멘텀이 아닌 기업을 포기하는 시점이 되는 셈이다. 중견기업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기업 경쟁력 잠식을 방지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전·사후관리요건을 현실화해야 한다”며 “히든챔피언과 명문장수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과 일본처럼 사후관리기간을 5년 또는 7년으로 단축하고, 업종전환과 자산처분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이같은 하소연에도 기존 여당 내에서는 오히려 상속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업상속공제제도의 매출액 요건을 3,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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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경기 부진과 재계의 건의가 이어지며 당정이 가업상속의 공제 기준을 현행 매출액 3,000억원 미만보다 높이고 최대 500억원으로 묶인 공제금액도 확대하는 방향 등으로 기운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 투자 확대, 경제 활력 제고, 경제 주체 심리 개선 문제와 긴밀히 맞닿아있고,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명문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 환경은 빠르게 바뀌는데 업종 요건 등이 너무 경직됐다는 의견이 많다”며 “사후 요건을 중심으로 보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여당이 움직인 만큼 국회 통과 전망은 밝아 보인다. 야당도 최근 비슷한 취지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만큼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여야 합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그간 기업 상속 공제 요건 완화를 꾸준히 주장했다. 지난달 7일에도 나경원 원내대표를 포함한 원내지도부가 주요 경제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업 상속 공제 문제를 다뤘다. 추경호 의원도 명문 장수기업에 한해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확대하고 증여세 과세특례 적용 한도를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정갑윤 의원도 한도 금액을 높이고, 공제 적용 기업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회가 정상화되는 대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에 대한 병합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가업상속공제 기준을 높여 대상 기업을 넓힌다면 큰 기업들의 영속성도 보장할 수 있다”며 “국가가 거두는 상속세가 줄어들더라도 고용 창출, 법인세, 투자액 등 긍정적인 효과가 세금 감소분보다 크다”고 강조했다./서민우·하정연·임진혁기자 ingaghi@sedaily.com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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