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협상 전권을 위임받고 지난 6일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한 전까지만 해도 판문점에서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를 만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평양을 직접 찾았다. 체류 기간 역시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7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도 “협상은 진행 중”이라고만 하고 비건 대표의 귀환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결국 비건 대표는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짧게 찾았던 것과 달리 2박 3일 일정을 소화한 후 8일 서울로 돌아왔다.
북한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본국과 연락을 취하기 어렵고 협상 전략이 북한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후 끝을 보겠다는 계획하에 평양행을 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미국의 대북 전문가인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실무협상이 길어진다는 것은 좋은 신호”라며 “(비건 대표가) 평양에 남아 북한 측과 비핵화의 실질적인 사안을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 기간이 길었던 만큼 비건 대표와 김 전 대사 간의 신경전도 첨예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에 체제보장은 물론 경제발전을 위한 직간접적 지원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조치에 맞춰 하나하나 요구사항을 늘어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제보장 차원에서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논의 등 정치·외교적 제스처는 물론 남북 협력사업 제재 면제 등도 요구사항으로 꺼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비건 대표가 방북 전 스탠퍼드대 강연을 통해 미리 공개했던 것처럼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의 강도도 만만치 않아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비핵화 회의론을 불식하기 위해 핵시설 폐기에 실질적인 사찰을 요구하는 한편 ICBM과 관련해서도 단순한 폐기 차원을 넘어 과학자·기술자 처리 문제까지 언급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2차 회담 개최 전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상반기 한미연합훈련 계획 발표를 회담 이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에서 이달 말 만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함께 부상했던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 시나리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일정을 부인하면서 수면 아래로 다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