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Science&Market] 우연한 발명이나 발견은 없다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사소한 현상에서 시작된 관찰이

오랜 연구 거쳐 발명으로 이어지듯

꾸준하게 몰입해야 결실 맺을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레인지’나 ‘페니실린’과 같은 세상을 바꾼 발명품은 흔히 우연히 발견(발명)된 것이라고 한다.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으로 불리는 전자레인지의 발명은 미국의 레이더 제작사인 레이던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퍼시 스펜서가 마그네트론 앞을 지나다가 주머니 속의 초콜릿이 녹은 것을 발견하고 지난 1947년 최초로 전자레인지를 상품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자레인지가 결코 우연히 발견됐다고 보기에는 필연의 산물인 부분이 많다. 스펜서는 18세부터 미국 해군에 근무하면서 라디오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독학으로 레이더 전문가가 돼간다. 1939년 스펜서는 레이더 튜브 설계에서 세계적인 기술자로 성장하고 이후 레이던에서 레이더의 핵심기술인 마이크로웨이브파를 발생하는 마그네트론 진공관 생산에 책임자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활성화된 레이더 앞에 서 있던 스펜서는 주머니 속의 초콜릿이 코팅된 캔디바가 녹은 것을 관찰하고 마이크로웨이브파와 관련이 있음을 직관하게 됐다. 그리고 팝콘과 계란 등 추가 실험을 통해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면 음식물을 가열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스펜서가 오랜 기간 레이더에 종사하지 않았다면 전자레인지가 발명됐을까.


페니실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플레밍은 미생물학자로서 1차 세계 대전 중 세균에 감염된 군인들이 폐혈증으로 사망이 속출할 때 이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살균제가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 사망자가 더 늘어나게 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중 살균제 처리가 혐기성 세균이 더 잘 기생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세균의 종류와 항균물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던 중 긴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실험실에서 성장한 페니실린의 포도상구균에 대한 항균작용을 발견하게 된다. 플레밍이 여름휴가를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페니실린이라는 푸른곰팡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지속적인 항균 연구가 없었다면 푸른곰팡이의 정체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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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소프트 레이저 이탈 이온화법’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학사 출신 회사원이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도후쿠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소니 입사에 낙방한 뒤 1983년 시마즈 제작소에 들어가 단백질 분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단백질을 파괴하지 않고 질량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농도나 혼합조성을 미세하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다나카가 개발한 레이저 기법은 평소 단백질 분석에 사용해온 아세톤 대신 실수로 글리세린을 혼합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실수를 알면서도 실험을 진행했는데 만약 단백질 질량분석에서 조성변화와 같은 폭넓은 실험의 경험이 없었다면 글리세린을 혼합한 시료를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연하게 발명·발견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수많은 실험과 연구 경험에서 나온 필연의 산물이다. 오랜 기간 몰입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우연처럼 보이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공상과학(SF)의 거장으로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는 “진정한 즐거움은 어떤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며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고 외칠 때 듣게 되는 가장 흥분되는 구절은 ‘유레카!’가 아니라 ‘거 참 재미있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에 의한 전자기학의 완성은 사실은 외르스테드의 전류가 나침반 바늘을 움직인다는, 비전문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전문가에게는 흥미로운 관찰에서 출발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주장한 만 시간의 법칙처럼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현상도 놓치지 않고 관찰해야 마침내 기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온다. 어떻게 하면 스쳐지나갈 수도 있을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주변의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분야에서 꾸준하게 준비하고 있으면 우연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기회를 필연적으로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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