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이봉창 의거와 관련된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록물 ‘이봉창 의사 선서문’을 비롯해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다.
수류탄 거사로 알려진 이봉창(1901∼1932) 의사는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를 만난 뒤 1931년 12월 13일 안중근의 동생인 안공근 집에서 선서식을 하고 선서문에 서명했다. 이후 일본에 입국한 그는 이듬해 1월 8일 도쿄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고, 결국 거사는 실패했지만 그 가치는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당시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한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섬유 재질로 본문과 인명·날짜는 먹색이 달라 시차를 두고 쓴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인명과 날짜는 이봉창이 남겼지만, 본문은 언제 누가 썼는지 알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이봉창이 의거를 위해 일본에 도착한 뒤인 1931년 12월 24일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이름으로 김구에게 의거 자금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서신이다. 이봉창은 의거를 ‘물품’에 비유하면서 “물품은 확실히 다음 달 중에 팔리니까 아무쪼록 안심하십시오. 또한 물품을 팔게 되면 미리 전보로 알려드릴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반흘림체 일본어로 서신을 적었다.
이에 응답해 김구가 이봉창에게 송금한 문서가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이다. 김구는 1931년 12월 28일 요코하마 쇼킨(正金) 은행 상하이 지점을 통해 이봉창에게 100엔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봉창 의거는 윤봉길 의거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역사적 사건”이라며 “이봉창 의사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희소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서 3건을 하나로 묶어 등록하려고 하나, 예고 기간 이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해서 어떻게 등록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변문우 인턴기자 bmw101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