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언제나 자기가 싸웠던 장소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죽으면 재가 돼 이곳(경기 파주 임진강 마량산 고지)에 묻혀 영면하고 싶다.”
6·25전쟁 때 중국군(중공군)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육박전을 벌여 전쟁영웅으로 불린 영국군 참전용사 고(故) 윌리엄 스피크먼(사진)이 생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다. 그의 유해가 오는 19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
국가보훈처는 15일 “참전용사 스피크먼의 유해봉환식과 안장식이 18일과 19일 각각 인천국제공항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개최된다”고 밝혔다.
스피크먼의 유해는 18일 오후4시께 아들딸 등 유족 4명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이어 오후5시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피우진 보훈처장 주관으로 주한영국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와 스피크먼의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방부 의장대 의식으로 유해봉환식이 거행된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봉안당에 임시 안치된 후 19일 오후2시 유엔 참전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 내 유엔묘지에 안장된다.
보훈처는 “자신이 싸워 지켜낸 한국 땅에 묻히고 싶어 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유해를 봉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안장식 준비와 유가족 체류 일정에 소홀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주문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영국군 병사로 참전해 영웅적인 공적으로 영연방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스피크먼은 지난해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51년 11월 임진강 유역 마량산(317고지)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마량산은 해발 315m로 임진강 일대의 저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당시 24세로 근위 스코틀랜드 수비대 1연대 소속이던 스피크먼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중공군에 맞서 수류탄 공격으로 적의 진격을 저지했다. 1951년 11월4일 새벽4시, 키 2m의 거구였던 스피크먼 이병은 다른 병사 6명과 함께 적진에 침투해 수십 개의 수류탄을 투척한 뒤 육탄전을 감행해 상대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투 도중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소속 부대가 철수할 때까지 후퇴하지 않고 적과 맞서 싸웠다.
스피크먼 이병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전우들은 대오를 정비하고 심기일전해 진지를 4시간 넘게 사수하면서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그는 1952년 1월 영국으로 후송됐지만 3개월 뒤 자진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같은 해 8월까지 전장을 지켰다.
그는 이런 전공으로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았고 지난 2015년 훈장을 한국에 기증했다. 영국 정부는 그의 이름을 본떠 맨체스터의 건물과 다리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2010·2015년에 한국을 방문한 스피크먼은 자신이 40여년 동안 정부기념식 등에 참석할 때 착용했던 십자훈장과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기념 메달, 국외 파병 메달 등 총 10점을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유엔 참전용사가 사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개별 안장되는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