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익률 저조로 기대주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신흥국 펀드가 올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춤했던 신흥국 펀드가 수익률이 반등하며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낙폭이 컸지만 올해 반등이 기대되는 신흥국 펀드는 중국과 러시아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비둘기파’적 발언을 통해 미국 금리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신흥국 증시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향으로 지난해 20% 넘는 손실을 입었던 중국펀드가 올해 반등에 나서고 있다. 중국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2%를 기록하며 ‘마의 10%’ 벽을 넘었다. 러시아펀드도 신용등급 상향과 대외채무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 상승 등 객관적인 근거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166개의 중국 펀드 평균 수익률은 12.16%를 기록하며 20개 지역 펀드 중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가장 낙폭이 컸던 중국 펀드의 상승폭도 가장 컸다. 최근 1개월 수익률도 7.89%를 기록했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 둔화 전망에 -24%를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삼성중국본토레버리지’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21.77%, ‘KB중국본토A주레버리지’ 21.70%가 가장 높았다. 이들은 지난 1년 수익률이 -20%였던 것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거의 30~40%가 오른 셈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KINDEX중국본토레버리지CSI300증권ETF’(14.81%), 한화ARIRANG심천차이넥스트펀드(10.29%)로 뒤를 이었다.
중국 펀드에 다시 온기가 도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 90일 동안 관세 부과를 멈추고 협상에 돌입한 데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펼친 덕분이다. 지난해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던 미국과의 관계에 숨통을 트면서 이달 1일 기준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연초 대비 7% 가까이 상승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행지수가 2016년 6월 이후 처음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올 들어서는 지난 1월에는 지준율을 1% 인하하고 인프라 투자 확대를 시행했다. 수출 절벽의 현실화로 중국 경기의 하방 압력이 높지만 정책 당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고 있어 중국 경기에 대한 기대감은 높은 상황으로 평가된다.
중국펀드로의 자금유입도 뒤따른다. 3개월 353억원이 유입됐는데, 이는 베트남(1,002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큰 수준이다. 일본(-209억원), 유럽(-576억원), 미국(-377억원) 등 여타 지역 펀드에선 자금유출이 이어진 것과도 대조적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증시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미국과의 무역갈등인데 외신에서 미중 무역협상 60일 연장가능성이 나오는 등 중국증시의 반등세는 이달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MSCI 차이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최근 5년 평균(11배) 수준까지 낮아졌고 위안화 강세전환으로 향후 중국 주식형 펀드로 자금 유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서방의 러시아제재가 5년째로 접어들면서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러시아펀드의 수익률이 치솟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8일 러시아 신용등급을 기존 Ba1에서 Baa3로 상향 조정했다. 러시아의 대외채무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은 2014년 57%에서 올해 80%로 증가한 상태다.
러시아 RTS 증시는 연초 이후 14% 급등했다. 러시아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상위 기업 절반 이상을 에너지 업종이 차지해 국제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최근 유가가 박스권에 갇혔음에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경제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 데 이어 대외리스크에 대한 내성이 증가하면서 안정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 펀드 지수 상승 뒤에는 국제유가 상승이 자리한다. 지난해 12월 말 이후 상승세로 돌아선 국제유가다. 고유가는 러시아 증시의 이익 전망치를 높인다. 러시아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기업 절반 이상은 에너지 업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내 러시아 경제를 괴롭혔던 루블화 급락세가 다소 진정된 것도 주가에 긍정적이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국의 변동성은 여전히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일각에선 앞서 중국 증시 뇌관으로 작용했던 대내외 변수들이 아직 말끔히 해소된 것이 아닌 만큼 섣불리 중국 펀드를 추격 매수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러시아 역시 확실한 추세 상승을 위해서는 서방의 경제 제재 해소로 증시의 프리미엄이 높아져야 하지만 상황 변화가 쉽지 않아 보여서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중국 주식 PER(주가수익비율)이 고점 대비 반토막 나면서 가격 메리트가 발생한 것은 맞다”면서도 “중국 PMI(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지난해 말부터 꺾여 저조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 내수 소비를 일으켜야 하는 경제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에서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얼마나 경기 부양 효과를 발휘할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