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무너지는 서플라이 체인]최저임금 인상에 인건비 20%↑...협력사 경영난, 업종붕괴 불러

<3> 주력산업 발목 잡는 정책리스크

車·조선 등 부품사 실적악화속 비용부담 늘어 '설상가상'

주52시간제 등 고비용 유인 정책에 공급망 균열 빨간불

대기업 등 원청업체 경쟁력도 하락...산업생태계 망가져

한 대형 조선사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경남 양산의 한 중소기업 주조공장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최저임금인상 등 정책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산=박한신 기자한 대형 조선사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경남 양산의 한 중소기업 주조공장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최저임금인상 등 정책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산=박한신 기자



경남 김해 안동공단에 위치한 조선 기자재 업체 A사의 김모 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숙련공 입장에서 흡족한 수준의 임금 인상을 보장하기 어려워서다. 김 사장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직원은 일부 신입사원뿐이지만 신입사원을 30% 올려주면 나머지도 15~20%는 올려줘야 하는 게 문제”라며 “오는 4월부터 임금협상을 하는데 신입사원과 별 차이 없게 된 직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까지 거래처에 현금결제를 해주고 원자재를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하며 버텨왔는데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지난해 창사 30년 만에 처음 적자를 냈다”고 했다.

기업들은 2년간 30%가량 오른 최저임금이 주력산업의 공급망 균열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주력업종의 영업이익 악화로 부품사의 이익률이 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부담이 겹쳐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조선 업계의 한 임원은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맞더라도 현실에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내·외국인, 업종·지역 등과 무관한 동일한 적용은 결국 우리 산업의 생태계만 망가뜨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책 변화→부품사 경영난→공급망 구멍→피해 속출=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 등으로 기술직에 대한 기피 풍조에 숙련공의 메리트도 줄면서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이는 공급망의 말단으로 갈수록 더하다. 조선 부품업체 B사의 김모 대표는 “우리 같은 3D 업종은 최저임금 인상으로도 휘청거리는 판인데 주52시간근로제도 기다리고 있다”며 “결국 일을 적게 하고 납품 물량도 반으로 줄이는 방법뿐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사람을 더 뽑아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데 기술자가 보이지도 않는다”며 “한 기술자가 하던 일을 다른 기술자로 교대하면 작업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품질의 일관성도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최근 수주가 늘면서 용접공을 채용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더라”며 “최저임금이 너무 오르면서 젊은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해도 그 돈을 받는데 힘들게 왜 기술을 배우냐’는 식이 많아 놀랐다”고 전했다.


조선 분야 C사는 최근 철을 녹일 때 넣는 물질인 탄소 전극봉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망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국내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중국에서 전량 수입하게 됐기 때문이다. C사의 한 임원은 “중국 업체가 얼마 전 1㎏에 2,200원이던 것을 1만2,000원으로 예고 없이 올려버렸다”며 “그 결과 원자재 수입에 따른 연간 비용이 2억원 남짓에서 10억원으로 5배 올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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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부실이 원청업체 경쟁력 하락으로 귀결=이미 대기업들은 협력업체 관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업황 부진에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금 압박까지 겹치며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곳이 수두룩한 탓이다. 한 대기업의 김 부장은 “협력업체의 자금난에 따라 부품 인도 전이라도 자금을 지급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협력사에는 선지급하고 그래도 위기 극복이 어려운 곳이면 부품이 제작되는 대로 우리가 인도하는 조건으로 수주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의 한 임원은 “부품업체가 망하거나 어려워지면서 부품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이게 결국 차 자체의 경쟁력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국내 주력업종 대부분이 이런 매커니즘에서 자유롭지 않은 점이다. 한 경제단체의 임원은 “원청업체의 부진, 통상전쟁에 따른 관세 부과, 고비용 구조를 유인하고 있는 각종 정책으로 자동차·조선·철강·가전 등이 모두 공급 체인망에 이상 신호가 들어왔다”며 “제조업 붕괴는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의 피해도 속출 중이다. 신고리 5·6호기 중단으로 원전 2차 협력업체들은 생사기로에 섰다. 2차 협력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보상범위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한 2차 협력사 관계자는 “1차 협력사까지는 한수원이 피해액을 보상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하늘 같은 원청에 보상을 요구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주당 52시간 근로 시행→베테랑 수입 감소→인력난 심화=주52시간근로제도 기업을 핀치로 내몰고 있다. 대기업 납품업체 D사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현재는 연 7,000만~8,000만원을 가져가는데 주52시간 근로가 적용되는 내년부터는 연봉이 거의 반 토막 나게 된다”며 “직원들 사이에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나 동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의 주조업체 김모 대표도 “내년부터 우리 회사도 주52시간근로제 적용을 받는데 직원들과 아무리 대책을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며 “주조업체들이 다 비슷한 상황인데 내년이 되면 과연 이 업이 대한민국에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직원이 200명 정도였던 이 업체는 현재 직원이 120여명으로 줄었다. 그래도 직원 100명이 넘어 내년 초부터 주52시간근로제 적용을 받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각종 정책이 산업생태계를 더 허약하게 만들고 있다”며 “특히 고령의 숙련공들이 대체인력도 없는 마당에 산업현장을 떠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양산·김해=박한신·구경우기자 hspark@sedaily.com

박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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