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핵 담판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등 대북 강경발언이 잦아들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보여주기식 행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미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보다 원론적인 비핵화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협상에 나서는 것은 국내 정치적 목적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핵 물질 및 무기시험 중단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제재완화를 주고받으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이 경제문제까지 해결하면서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18일 “정상회담을 해봐야 총론적인 합의에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 재선을 앞둔 트럼프 입장에서는 외교적 성과를 강조해야 하는 만큼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보다 자꾸 포장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우리는 단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테스트를 원하지 않을 뿐”이라고 밝혀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결과물에 대한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을 까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과거 FFVD를 주장하며 실험뿐 아니라 완전한 핵 폐기를 강조하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완화된 표현이다. 이에 따라 북미가 2차 정상회담에서 핵 물질 및 무기 동결과 종전선언을 주고받는 ‘스몰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차 정상회담 이후에도 협상을 한다는 얘기를 보면 진전된 합의를 북미가 이뤘을 가능성이 적다”며 “북미 간의 종전선언 격인 상호불가침 조약이라든지 아니면 연락사무소 설치까지 갈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비핵화와 제재완화 이외의 것들로 공동선언문을 채우려고 할 것 같다”고 예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 실험 중단을 성과로 내세우면서도 비핵화 전 제재완화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점도 미국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서경 펠로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트럼프 입장에서는 핵 동결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도발을 막고 현재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며 “연락사무소나 종전선언, 인도적 지원 정도의 스몰딜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 대한 국내 불만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제재완화를 거래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서경 펠로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풀어주면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 굉장히 많다”며 “일단 허용하면 제재를 복원하는 게 새로 만드는 것만큼 힘들기 때문에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2차 정상회담이 스몰딜에 그칠 경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며 비핵화 조치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차 정상회담의 비핵화 의제가 지난 2005년 9·19 공동선언보다 후퇴했음에도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9·19합의 때 북미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러·일 등 6자가 북한의 모든 핵 포기 및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등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고 공동성명까지 발표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전례가 있다. 신 교수는 “트럼프의 말을 보면 핵 실험하지 말고 핵 실험이 없었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데 핵 동결은 사실상 핵보유국의 인정”이라며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우리 핵기술을 외부에 이전하지 않을 것이며 핵실험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NPT에 규정된 핵보유국의 의무사항”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