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권회복, 경제독립 추진한 국채보상운동 112주년 기념식 21일 개최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1904년 국채보상운동은 1997년 외완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1904년 국채보상운동은 1997년 외완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권 회복과 경제적 독립을 위한 국채보상운동 제112주년 기념식이 21일 오후 2시 대구 엑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다.

국채보상운동은 1904년 일제의 고문정치가 시작되면서 도입한 차관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대한매일신보에 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2,000만 동포가 금연을 통해 모은 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는 취지문이 발표되자, 전국의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종교를 뛰어넘어 일본, 미국, 러시아의 동포들까지 참여한 모금운동으로 확대되어 구한말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확대됐다.


특히 유학생과 교포들이 외국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통해서도 해외로 알려졌다.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이 전세계에 전파돼 외채에 시달리는 다른 피식민지국들에게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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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1909년)과 멕시코(1938년), 베트남(1945년)등도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에 자극 받아 일어났다. 유네스코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고 가장 끈질지게 전국민이 참가했으며 기록물도 온전하게 보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7년 국채보상운동 자료를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올렸다.

그러나 1907년 말부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탄압과 발행인인 영국인 베델 추방 공작이 전개되고, 1908년에는 대한매일신보 총무인 양기탁에게 국채보상금을 횡령하였다는 혐의를 씌워 구속하는 등 일제의 탄압이 가속되자 국채보상운동은 위축되어 좌절됐다. 하지만 이 운동은 우리 민족 자주 독립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은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신동학)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에는 박신한 대구지방보훈청장, 각계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와 회원,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다. 기념사와 축사, 국채보상운동 창작뮤지컬 ‘기적소리’ 공연, 시상, 시립국악단과 경북도립국악단의 축하공연 등의 순으로 행사가 진행된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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