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고려청자 비밀 담은 '순화4년명' 국보로

왕실 제사에 사용된 항아리

청자의 기원으로 가치 높아

국보 승격이 예고된 보물 237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사진제공=문화재청국보 승격이 예고된 보물 237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사진제공=문화재청



고려청자가 초기에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기원을 알려주는 보물 청자 항아리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제273호 ‘청자 순화4년(淳化四年)명 항아리’를 보물 지정 56년 만에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고려청자의 초기 제작상황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 결과다. 문화재청은 일부 훼손됐던 이 유물을 수년간의 보존처리 끝에 최근 복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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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고 알려진 이 항아리는 바닥면 굽 안쪽에 ‘순화사년 계사 태조제일실 향기 장최길회 조’(淳化四年 癸巳 太廟第一室 享器 匠崔吉會 造)라는 18자가 새겨 있다. 이름에도 방점이 찍힌 ‘순화4년’은 고려 성종 12년인 지난 993년을 가리킨다. 계사년인 순화4년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의 제사를 지내는 태묘의 제1실에서,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그릇이며 도예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태묘는 성종 8년인 989년에 착공해 992년에 준공됐으니 이 항아리는 그 이듬해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태묘는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에 그 터를 남기고 있으나 이 항아리의 출토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소장가 손을 거쳐 이화여대 박물관이 1957년에 구매했다. 높이는 35.2㎝이며 문양이 없다.

이 항아리를 두고 한때는 청자가 아닌 백자라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지금은 청자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몸체는 어깨 부분이 넓고 표면에 아주 작은 기포, 유약이 굳으면서 생긴 미세한 금인 빙렬(氷裂), 긁힌 흔적이 있다. 황정연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 용도와 사용처, 제작자를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초기 청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편년 자료로 가치와 위상이 높다”며 “원산리 가마터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항아리와 가마터를 비교 연구해 청자 기원에 대해 더욱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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