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이 5세대 이동통신(5G)을 둘러싼 기술전쟁으로 치닫는 가운데 인텔이 중국 칭화유니그룹과 5G 모뎀 칩 협력을 중단했다. 지난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파트너십을 발표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협력이 중단된 것이다. 스마트폰·반도체·통신장비를 필두로 5G시장을 노리고 있는 삼성전자(005930) 입장에서는 잠재적 경쟁자의 부상이 막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28일 닛케이아시안리뷰 등 외신에 따르면 인텔과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스프레드트럼은 5G 모뎀 칩 개발 협력을 중단하기로 했다. 양사는 “상호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인텔이 트럼프 정부를 의식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 “인텔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회사와의 밀접한 관계가 미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해왔다”고 전했다. 인텔은 지난 2014년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를 들여 칭화유니그룹의 지분 20%를 매입했다. 이 때문에 칭화유니는 미중 무역분쟁에서 비켜나 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결국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프레드트럼은 자체 5G 모뎀 칩 개발을 계속해 올해 안에 제품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 시장조사기관 시노(CINNO)의 션 양 연구원은 “이번 결정은 인텔보다는 스프레드트럼에 치명적”이라며 “인텔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다른 중국 고객사와 손을 잡을 수 있지만 스프레드트럼은 선진 기술을 빠르게 습득할 기회를 놓친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이미 중국 D램 업체인 푸젠진화에 장비·부품·기술 수출 제한조치를 내려 사실상 고사시킨 바 있다. 여기에 시스템 반도체인 5G 모뎀 칩과 관련해서도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중국 메모리 개발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비메모리까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5G 모뎀 칩을 공개한 기업은 퀄컴·삼성전자·화웨이·인텔·미디어텍 5곳뿐이다. 다만 자체 5G 칩을 탑재하는 삼성전자와 화웨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가 퀄컴의 5G 칩을 채택한 상태다. 후발 기업인 인텔과 스프레드트럼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는 않다는 얘기다.
다만 이제 5G시장이 막 열리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경쟁자가 제거됐다는 효과는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에서도 퀄컴·화웨이 등과 제대로 겨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애플과 퀄컴의 반독점 소송 과정에서 “애플이 아이폰에 삼성전자·미디어텍·인텔의 5G 모뎀 사용을 고려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 5G 모뎀 칩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퀄컴과 삼성전자의 5G 통신 칩을 모두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는 호재다. 양사의 5G 칩을 탑재한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삼성 파운드리 매출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5G 상용화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미세공정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과 퀄컴의 5G 모뎀 칩은 모두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되는 반면 화웨이의 칩은 대만 TSMC에서 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