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당뇨망막병증의 아픔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 교수




지난 1999년 최고 인기 가수 이정현과 조성모는 한 통신사 광고에서 “내 꿈 꿔”라는 음성메시지를 통해 연인들이 어떻게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영화 ‘프렌치 키스(1995)’에 나오는 ‘드림 어 리틀 드림 오브 미(Dream a little dream of me)’라는 노래는 “내 꿈 꿔”로 들린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1931년 넬슨 재즈 오케스트라가 처음 녹음했으니 “내 꿈 꿔”라는 말은 90년 가까이 된 셈이다.

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리바이벌했다. 그중 깊은 인상을 줬던 가수는 1950년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부른 엘라 피츠제럴드(1917~1996)다. ‘노래의 여왕(First lady of song)’이라는 별칭답게 트럼펫이 사람의 목소리와 잘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2차 세계대전 후 암울한 세상에 희망과 사랑을 전해준 그는 그래미상을 열네 번이나 수상했다. 그의 75세 생일기념 음반 속에 이 노래가 들어 있다. 그는 79세로 장수했지만 안타깝게도 당뇨병의 무시무시한 합병증 때문에 괴로웠다. 76세에 당뇨 눈 합병증(당뇨망막병증) 때문에 두 눈의 시력을 잃었고, 발 합병증으로 두 발을 절단해야 했으니 말이다. 뉴욕타임스는 부고란에 그가 수년간 당뇨병과 합병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다고 썼다.

1996년이면 당뇨망막병증에 대한 레이저나 수술치료가 있던 시기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시력을 잃을 정도면 적어도 당뇨병을 20년은 앓았을 텐데 그동안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일까. 미국의 부촌 베벌리힐스에 사는 국민영웅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당뇨병으로 당 수치가 높은 혈액이 흐르면 혈관이 손상된다. 눈 속의 필름인 망막은 우리 몸에서 콩팥(신장)·발과 함께 미세한 혈관이 많은 곳이다. 당뇨병의 합병증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뇨병으로 망막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면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어지면서 필름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혈관이 없어 죽어가는 망막 부위를 레이저로 지지는 레이저 광응고술을 하면 약하기는 하지만 미세혈관이 남아 있는 중심부 망막이 오랫동안 버티며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는 60대부터 호흡기 질환으로 자주 입원을 했고 73세(1991년)에 카네기홀 공연 이후 은퇴했다고 하니 아마도 전신의 상태가 나쁜데도 음악생활을 계속 하다 당뇨 합병증들을 제때 잘 치료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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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당뇨병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가 발표한 ‘당뇨병 팩트시트 2018’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50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환자의 3분의1 이상은 자신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당연히 치료도 받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명의 첫 번째 원인은 아직까지도 당뇨망막병증이다. 당뇨병을 20년 정도 앓은 환자의 85%는 눈에 문제가 생기고 5명 중 1명은 시력이 저하된다. 따라서 시력을 잃지 않으려면 조기 검진과 치료를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안과학회에서는 40세가 되면 반드시 눈 검진을 받도록 권하고 있다. 노안과 함께 오는 백내장·녹내장·황반변성, 그리고 당뇨망막병증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들 질환은 조기에 발견하면 시력 소실을 많이 예방할 수 있다.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면 가까운 안과에서 꼭 눈 검사를 받고 이후 매년 한 번씩 망막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요즘에는 망막혈관을 안정시켜 망막의 손상을 늦추는 주사치료도 개발돼 있다.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인 “내 꿈 꿔”라는 말 속에 피츠제럴드의 눈물 어린 당뇨망막병증의 아픔이 함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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