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 허덕이는 시민 500만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혁명’입니다.”
6일(현지시간)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는 한껏 힘이 실린 목소리로 자신이 이끄는 집권 오성운동의 대표 공약인 ‘시민소득(reddito di cittadinanza)’ 정책 개시를 알렸다. 시민소득 신청을 시작한 이날 접수창구인 이탈리아 전국의 우체국과 조세지원센터는 정부의 생계비 지급을 요구하는 인파로 붐볐다. 홈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일시 다운되기도 했다.
시민소득은 정부가 저소득층과 실업자에게 생계를 꾸릴 최소한의 돈을 지원하는 이탈리아판 ‘기본소득’ 제도다. 제도 시행으로 연 소득이 9,360유로(약 1,200만원)에 미치지 못하거나 일자리 없이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국민은 월 최대 780유로(약 100만원)를 받게 된다. 이달 말까지 신청을 마친 뒤 대상자가 되면 오는 5월께 직불카드 형태로 첫 지원이 이뤄진다. 디마이오 부총리와 오성운동은 이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에게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뿐 아니라 소비를 촉진해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 되고, 동시에 일자리 창출도 견인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의 ‘호기로운’ 시도에 경제학자들은 우려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30%가 넘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지고 있는 현재 이탈리아 재정과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기본소득 지급은 막대한 재정 리스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집행을 위해 이탈리아 정부가 책정한 예산은 올해 71억유로(약 9조1,000억원)에서 내년에 78억유로로, 전임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보조금으로 책정했던 연간 20억유로의 예산보다 3배 이상 많은 액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예산은 내년에 78억유로, 2021년에는 80억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본소득 정책 하나로 저소득층 구제부터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까지 기대하는 지나친 목표설정부터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셸 라이타노 라사피엔차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걸 기대하는 것 같다”며 “기본소득의 주목적은 빈곤층에도 최소한의 삶의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인데 이 정책 하나에 여러 가지 기대효과를 바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의 문제점은 앞서 정책을 도입했던 다른 국가의 실험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핀란드는 지난 2017년 1월부터 2년간 25~58세 실업자 2,000명을 임의 선발해 이들의 구직 여부와 무관하게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2만원)의 기본수입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구직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제도 실행을 중단한 바 있다. 1982년부터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한 미국 알래스카주의 경우 극심한 재정부담에 해마다 지급액수를 줄이고 있고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비용부담을 이유로 1년 만에 시범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논란에도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는 4∼5월 총선을 앞둔 인도에서는 인도 연방의회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의 라훌 간디 총재가 집권 시 모든 빈곤층에 기본소득을 보장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다만 어떤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소득을 보장할지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다. 야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연방정부도 일부 주 지방정부에 한해 전 주민 기본소득 보장, 저소득층에 대한 취업·대입정원 10% 할당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도 민주당 일부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탈리아가 기본소득 제도를 개시한 것 역시 5월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를 겨냥한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