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아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첫 정식 공판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적폐의 온상’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은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정식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가공의 프레임’이라는 내용의 진술을 10분에 걸쳐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우선 “지난 8개월간 사법행정 전반에 대해 진행된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연일 고초를 겪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동료 법관·법원 가족에게 죄송하다”면서도 “다만 지난 시기 양승태 사법부가 지금 검찰이 단정하듯 재판거래와 재판 관여를 일삼는 터무니 없는 사법 적폐의 온상으로 치부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시기 사법부에서 사법 행정을 담당한 모든 법관을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이 기소한 자신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특히 재판거래 혐의에 대해 “사법부가 이른바 재판거래를 통해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닌 가공의 프레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법원행정처가 하는 일 중엔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며 “재판 독립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사법부 독립이라고 해서 유관 기관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유아 독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사법부를 위해 유관 기관과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고 상호 협조를 구하는 역할은 부득이 행정처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며 “정치 권력과 유착하는 것과 일정한 관계를 설정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판 관여 혐의에 대해서도 “다양한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일선 법원의 주요 재판을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다”며 “부득이 의견을 개진할 때도 있지만 일선 법관의 양심을 꺾거나 강제로 관철한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법원행정처 내에서 작성한 각종 보고 문건에 대해서도 “검찰·청와대를 비롯해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능히 할 수 있는 내부 검토로, 개인으로 비유하자면 일기장”이라면서 “그것이 바로 직권남용으로 연결된다는 검찰 논리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 전 처장은 지난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언론 보도 등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그는 “여론몰이식 보도와 빗발치는 여론의 비판 속에 변명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여기까지 왔다”면서 재판부에 “공소장 켜켜이 쌓여 있는 검찰발 미세먼지에 반사돼 형성된 신기루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지 충실히 심리해달라”고 호소했다.
임 전 차장은 재판을 집중심리로 진행하겠다는 재판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막강한 공격 화력을 보유한 검찰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졸속 재판으로 전락해 검찰 사법화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방어권 보장을 위해 기일을 합리적으로 잡아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