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팁스(TIPS·민간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지원 프로그램)’ 우승 최고경영자(CEO)들은 처음부터 세세하게 요구하는 관료적인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시스템과 함께 특허·논문 연구가 주를 이뤄 창업이 힘든 대학 현실에 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우선 정부 R&D 과제와 관련, 김재진 이오플로우 대표는 “심사위원이 사업화를 안 해본 교수 위주인 게 큰 문제다. R&D 중 R은 교수가 하는 게 맞지만 D까지 심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제를 수주할 때 인슐린 펌프 두께를 얇고 넓적하게 한다고 썼다가 나중에 좀 더 두껍고 좁게 만든다고 했더니 성공 판정을 받지 못하고 성실 실패로 구제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팁스가 성공한 게 운용사가 붙어 D 쪽도 강해서라는 게 그의 말이다.
배준범 필더세임 대표는 “정부의 과제 제안서를 쓰다 보면 양식을 벤처 쪽에 맞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희망했다. 개발제품의 부품 크기도 개발단계에서 바뀔 수 있는데 상세히 쓰라고 요구하고 있어 팁스처럼 자유롭게 쓰게 하면 더 좋겠다는 얘기다. 지원할 때 후속 투자나 고용 규모, 매출 시점을 잘 모르는데 성공 판정을 받는 데만 매달려 서류를 써내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성기광 닷 공동대표는 “여러 부처의 과제를 하는데 요즘은 팁스를 포함해 스타트업 과제가 3년짜리라면 당초 잡았던 계획을 업데이트하며 기회를 주는 추세다. 비즈니스화까지 하는 과제도 나온다”고 평가했다. 다만 R&D 자금이라 당연할 수도 있지만 양산까지는 쓸 수 없다고 했다.
외국 대학과 달리 실험실 창업이 부진한 현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배 대표는 “학생 창업도 많이 보는데 기술력이 안 되거나 되더라도 금방 따라잡히는 사례가 많다. 결국 기술력 있는 교수나 연구원이 많이 창업해야 하는데 유니스트는 그렇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학교나 출연연이 창업에 관해 논의는 많지만 실질적인 지원제도가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창업 시 학교의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출연연은 겸직 허용이 안 되는 경우도 많으며 내부 시선이 곱지 않고 초기 투자유치도 힘들어 도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특허가 과제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특허를 위한 특허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며 “실력 있는 변리사에게 논문을 주면 몇 개의 특허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과연 상용화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대표는 “서울대 교수들도 좋은 지식재산권(IP)을 갖고 있어도 눈치가 보여 창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IP 권리를 학교가 갖는 게 당연하지만 교수도 돈을 벌게 해줘야 연구에 더 몰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처럼 좋은 특허를 헐값에 사가는 일도 발생했는데 학교도 미국처럼 특허를 매각하지 않고 라이선스만 준다면 계속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